안개꽃 / 정호승 꽃시 안개꽃 정호승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으면 죽어서도그대로 피어 있는가 장미는 시들 때 고개를 꺾고 사람은 죽을 때 입을 벌리는데 너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같구나 세상의 어머니들 돌아가시면 저 모습으로 우리 헤어져도 저 모습으로... 꽃시 사랑 2009.05.12
들국화 / 노천명 꽃시 들국화 노천명 들녁 비탈진 언덕에 늬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칠은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 꽃시 사랑 2009.04.30
도라지꽃 / 조지훈 꽃시 도라지꽃 조지훈 기다림에 야윈 얼굴 물 우에 비초이며 가녀린 매무새 홀로 돌아앉다. 못견디게 향기로운 바람결에도 입 다물고 웃지 않는 도라지꽃아. 꽃시 사랑 2009.04.28
제비꽃 / 허영숙 꽃시 제비꽃 허영숙 밤하늘에 뜬 별 밤새 누가 내 집 마당에 옮겨 심어놓고 갔나 풀꽃 사이에 반짝이는 보라빛 작은 별 무리 톡, 톡 이슬이 내리면 수줍은 듯 고개드는 꽃잎 꽃잎 위에 피어나는 이름 하나 부르면 눈물 먼저 와서 대답하는 그대라는 이름 하나 꽃시 사랑 2009.04.06
할미꽃 / 홍이선 꽃시 할미꽃 홍이선 아지랑이 피는 봄 언덕에 왼 종일 쪼그리고 앉아 나물 캐다 허리 굽은 귀밑머리 하얀 할머니 세월의 흔적 아스라이 내려앉은 늙고 쇠잔한 육신에 지루한 변명처럼 구부러진 생을 떠안고 외로움 게우는 모습이 처연하다 단내 물결치던 세월의 빛깔이 곰삭은 선홍빛 요절처럼 곱다 꽃시 사랑 2009.04.02
석류 / 오정방 꽃시 석류 오정방 속 살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안으로 안으로 감추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할 수 없는 헛수고 아리도록 저미는 그리움을 한나절도 끝내 참아내지 못해 드디어 가슴을 열어 젖히고 다가오는 9월의 태양을 미소로 맞이했다 <2000. 9. 23> 꽃시 사랑 2009.03.12
복수초 / 최남선 수녀 꽃시 복수초 최남선 수녀 한해 돌아 사순절이 올 무렵이면 수녀원 중정 작은 꽃밭에 하얗게 쌓인 눈을 헤치고 승리의 개선가 부르며 제일 먼저 피는 꽃 황금빛 반짝이는 얼굴 하늘 보며 찬미 영광 드리네. 혹한을 참아낸 너의 소리 없는 웅변 사랑과 침묵의 명강론에 오가는 행인들 가슴속 깊은 감동의 울림.. 꽃시 사랑 2009.03.09
제비꽃 / 박태언 꽃시 제비꽃 박태언 눈만 맞추면 웃음이 절로 난다 벙글어지는 저 입 지긋이 눈 감고 감추려하지만 사랑을 하는 자태가 고웁다 몰래 뒤로 돌아가 껴안는 태양 볕이 따사롭다 아이 깜짝이야 화들짝 깨어 화다닥 피어나는 제비꽃 덩달아 시샘하며 삐치는 하얀 씨방이 비비꼬이며 속내를 드러낸다 아이고 깜.. 꽃시 사랑 2009.03.03
들국화 / 김용택 꽃시 들국화 김용택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된답니다 아니, 물기가 없어도 조금은 견딜 수 있지요 때때로 내 몸에 이슬이 맺히고 아침 안개라도 내 몸을 지나가면 됩니다 기다리면 하늘에서 아, 하늘에서 비가 오기도 한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그렇게 .. 꽃시 사랑 2009.02.22
매화 / 이병기 꽃시 매 화 이 병 기 외로 뎌더두어 미미히 숨을 쉬고 따뜻한 봄날 돌아오기 기다리고 음음한 눈얼음 속에 잠을 자던 그 매화 손에 이아치고 바람으로 시달리다 곱고 급한 성결 그 애를 못 삭이고 맺었던 봉오리 하나 피도 못한 그 매화 다가오는 추위 천지를 다 얼려도 찾아드는 볕은 방으로 하나 차다 어느.. 꽃시 사랑 2009.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