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시 사랑

들국화 / 노천명 꽃시

박남량 narciso 2009. 4. 30. 12:58

 


 
  들국화




   노천명

 
 
   들녁 비탈진 언덕에 늬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칠은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아름 고이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웃음 걷은 네 얼굴은 수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잎 두잎 병들어갔다

   아침마다 병이 넘는 맑은 물도

   들녁의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

   너는 끝내 거칠은 들녁 정든 흙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은 이제

   시들고 마른 너를 다시 안고

   푸른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주러 나왔다


   들국화야!

   저기 늬 푸른 천정이 있다

   여기 늬 포근한 갈꽃 방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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