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대신을 비꼬는 고사성어 반식재상(伴食宰相)

박남량 narciso 2015. 7. 13. 12:52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대신을 비꼬는 고사성어 반식재상(伴食宰相)



중국 당(唐)나라 6대 황제 현종(玄宗)은 정권 탈취의 음모를 꾸미고 있던 측천무후의 딸인 태평공주(太平公主)와 그 일파를 제거하고 연호도 개원(開元)이라 바꾸었다. 현종(玄宗 685-762)은 양귀비(楊貴妃 719-758)를 총애하다가 나라를 망친 황제로 유명하지만 즉위 초에는 현인(賢人)을 등용하고 문예를 장려하여 '개원(開元)의 치(治)'라 불리울 만큼 문물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명재상 요숭(姚崇 650-721)의 공로가 지대하였다.

개원 2년(713) 현종(玄宗)은 과감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문무 백관의 호사스러운 관복을 불살라 사치를 금하고 조세와 부역을 줄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형벌제도를 바로잡고 부역을 면하기 위해 승적(僧籍)에 오른 자를 환속시키는 등 민생안정에 주력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변방에 절도사 를 배치하였다.

현종(玄宗)의 치세가 성공할 수 있던 것은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의 충실한 보좌 덕분이었다. 요숭(姚崇)이 재상에 재임하였을 때 노회신(盧懷愼)도 함께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 노회신(盧懷愼)은 청렴결백하고 검소하며 근면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재상에 있었을 당시 재산을 늘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어 오히려 식솔들은 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지만 행정적 수완은 형편없었다.

어느 날 요숭(姚崇)이 병으로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노회신(盧懷愼)이 정사를 대행하게 되었는데 노회신(盧懷愼)은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쩔쩔매어 처리할 일들이 날마다 쌓여만 갔다. 그래서 중요한 국사 결정에는 요숭(姚崇)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다시 돌아온 요숭(姚崇)이 국정을 살피면서 노회신(盧懷愼)이 처리하지 못한 정사를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이때 노회신(盧懷愼)은 자신의 능력이 요숭(姚崇)에 미치지 못함을 알자 이후 거의 모든 일을 요숭(姚崇)과 일일이 상의한 다음 처리하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노회신(盧懷愼)을 가리켜 상반대신(相伴大臣)이라는 뜻으로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 조롱하였다. 무능한 대신이라는 조롱의 뜻이다.



구당서(舊唐書) 노회신전(盧懷愼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반식재상(伴食宰相)이다.

반식재상(伴食宰相)이란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대신을 비꼬는 말로 재상 옆에 대신이라는 상반대신(相伴大臣) 또는 반식대신(伴食大臣)이라고도 부른다. 능력이나 전문지식과는 관계없이 학연, 혈연, 지연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지는 즉 다른 사람 덕분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