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박남량 narciso 2020. 2. 17. 15:23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수로(水路)라는 아주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습니다.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인 경덕왕(景德王) 비(妃)의 어머니입니다.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을 갈 때의 일입니다. 해변가에서 쉬고 있을 때 곁에는 철쭉꽃이 만발한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수로부인이 그것을 보더니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누구 저 꽃을 꺽어줄 사람 없는가?"

하지만 절벽이 너무 가팔라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때 암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꺽어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노래를 지어 부르니 이것이 '헌화가(獻花歌)'입니다.

紫布岩乎 希
(자포암호 희)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집음호수모우방교견)
吾 不喩 伊賜等
(오 불유 이사등)
花 折叱可獻乎理音如
(화 절질가헌호리음)

붉은 바위 끝에
잡고 있는 어미소 놓으라 하시고
이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꺽어 드리오리다

그리고 노인은 곧 사라져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행은 다시 이틀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임해정(臨海亭)에서 쉬고 있을 때, 바다의 용이 부인을 끌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순정공은 아무런 계책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옛날 사람 말에, 衆口鑠金(중구삭금) 여러 사람의 말은 쇠(鐵)같은 물건도 녹인다 했으니 바다의 생명인 용(龍)인들 어찌 뭇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여기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龜乎龜乎出水路
(구호구호출수로)
掠人婦女罪何極
(약인부녀죄하극)
汝若悖逆不出獻
(여약패역불출헌)
入網捕掠燔之喫
(입망포락번지끽)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간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순정공이 노인의 말대로 하였더니 정말 용(東海龍)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부인을 바쳤습니다. 이 일 외에도 수로부인은 용모가 너무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잡혀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용에게 그랬듯이 '해가(海歌)'를 불렀다고 합니다. 신라인들은 향가를 제작하여 여러 사람이 부를 수 있도록 하였으며 향가는 쇠를 녹이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르면 부를수록 향가의 힘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