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긍제(兢齊) 김득신(金得臣)의 반상도(班常圖)

박남량 narciso 2019. 11. 7. 13:39

 

우리 미술관 옛그림


긍제(兢齊) 김득신(金得臣 1754-1822) <반상도(班常圖)>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인 긍제(兢齊)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은 국가에서 녹봉을 받는 도화서(圖畵署) 화원 출신으로 초도 첨절제사(椒島 僉節制使)에 이르렀습니다. 긍제(兢齊)라는 호는 전전긍긍(戰戰兢兢)이라는 시경(詩經)의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는 인물화(人物畵)과 풍속화(風俗畵)를 잘 그렸으며 심사정과 정선과 함께 영조 때의 삼재(三齋)로 불렀습니다. 긍제(兢齊) 김득신(金得臣)의 시대에 풍속화(風俗畵)가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풍속화(風俗畵) 쇠퇴의 출발점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긍제(兢齊)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반상도(班常圖)라는 풍속화(風俗畵)입니다. 노상알현도(路上謁見圖)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양반과 상민 부붕의 모습을 통해 조선시대의 사회 신분 질서를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풍속화(風俗畵)입니다. 풍속화(風俗畵)에 나타난 신분사회에 대한 풍자는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만큼 사회 분위기도 전 시대와는 달랐던가 봅니다.

양반에 관해서 말하자면 양반이라는 말 자체는 고려 시대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이는 원래 문관과 무관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현직 관료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고려 시대와 같은 의미로 양반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신분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조선 전기에는 양반의 아들이라도 군역(軍役)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던 데 반해, 16세기 이후 점차 양반 가문의 후손들은 모두 군역(軍役)을 면제받는 특권을 지니게 되었고 그 신분적 성격은 점차 강호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우리 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양반 문화야말로 가장 당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입니다. 양반들의 의식과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가 사회에 어떠한 구실을 하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