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박남량 narciso 2019. 10. 8. 16:25

 
우리 미술관 옛그림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이 그림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라는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입니다. 희이선생(希夷先生) 진단(陳摶 872-989)이 나귀를 타고 길을 가던 중 깜짝 놀라 나귀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동자가 놀래서 급히 달려가고 또 지나가던 한 인물이 뒤돌아본다는 고사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송(宋)나라 관상학에 조예가 깊었던 희이선생(希夷先生) 진단(陳摶)이 왕조가 바뀌고 새 왕조가 일어섰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참된 군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마음이 아픈 듯 인상을 썼습니다. 어느 날 흰 나귀를 타고 하남성 개봉으로 가던 중 조광윤(趙匡胤 )이 하남성 개봉(開封)에 나라를 세워 태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일찍이 조광윤(趙匡胤 927-975)의 왕위 등극을 예언하고 천하평정을 하리라는 그 예언이 맞아떨어지자 박수를 치며 웃다가 나귀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내용입니다. 나귀에서 떨어지면서도 "천하가 이제 안정되리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진단(陳摶)이 나귀에서 떨어지면서도 웃고 있는 표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조광윤(趙匡胤)이 여러 차례 조서를 내려 그를 만나려 했으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광윤(趙匡胤)은 낙양(洛陽)의 협망영(夾馬營)이란 군영(軍營)에서 태어나 절도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황제는 일곱 살이었는데 북쪽의 요나라가 쳐들어오자 군인들이 어린 황제로는 난국을 타개할 수 없다고 판단해 술이 취해 쓰러져 있는 조광윤(趙匡胤)에게 황포(黃布)를 입혀 황제로 추대했습니다. 얼떨결에 황제가 된 조광윤은 진단(陳摶)의 판단처럼 중국 역사상 가장 너그러운 군주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적을 죽이기보다는 포용했고, 사대부의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칼을 뽑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림 왼쪽 위에 있는 화제(畵題)는 1715년 8월 상순에 숙종(肅宗)이 지은 어제시(御製詩)입니다.
希夷何事忽鞍徙(희이하사홀안사)
非醉非眠別有喜(비취비면별유희)
夾馬徵祥眞主出(협마징상진주출)
從今天下可無悝(종무천하가무리)
              歲在乙未秋仲上浣題(세재을미시상완제)

희이선생이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한 것도 아니고 졸음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을미년 8월 상순에 쓰다

희이선생(希夷先生) 진단(陳摶)이 세상을 걱정하다가 조광윤에 의해 송(宋)나라로 통일되었다는 소식에 기뻐 나귀에서 떨어진 이야기는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를 그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숙종(肅宗)임금에게 올린 어람(御覽)용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