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이 허장성세(虛張聲勢)입니다
익살스럽고도 멋이 있는 해학(諧謔)과 빗대어 재치 있게 비판하는 풍자(諷刺)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음의 여유에서 옵니다. 세상이 각박하다 하여 여러분의 마음까지 각박해지면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는 나오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웃음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입심 세고 넉살 좋기로 유명한 김인복(金仁福)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나라에서 사치스럽다 하여 금지한 검은 달비털로 만든 남바위를 쓰고 다니다가 사헌부 금리(禁吏)에게 잡히게 되었습니다. 금리(禁吏)는 김인복(金仁福)의 옷자락을 붙잡고 남바위를 빼앗아 시전(市前)에 맡겨두고는 관부에 끌고 가서 고하려고 하였습니다.
금리(禁吏)라면 도성 안의 범법 행위를 단속하는 사헌부(司憲府)의 하급 벼슬아치인데, 김인복(金仁福)은 어깨를 뽐내면서 주먹을 뻗치고 "이 녀석, 죽여 버릴 까보다." 하며 세차게 을러대었습니다. 그러자 금리(禁吏)가 어이없어 하며 소리쳤습니다.
"이 놈! 나는 사헌부의 금리다. 네 놈이 나를 죽이고 어디 가서 살려느냐?"
금리(禁吏)가 이렇게 호통을 쳤지만 김인복(金仁福)은 조금도 꿀리는 기색이 없이 사헌부에 딸린 벼슬들을 지칭하는 정5품 지평(持平), 정4품 장령(掌令), 종3품 집의(執義), 종2품 대사헌(大司憲)과 태조를 가리키는 개국(開國)과 정사(定社), 정조를 가리키는 좌명(佐命), 성종 때 왕권강화에 기여한 좌리 공신(佐理公臣)을 들먹이며 더 세차게 을러대었습니다.
"나는 너의 사헌부의 이십사 감찰 따위는 개가죽같이 우습게 본다. 지평(持平), 장령(掌令), 집의(執義), 대사헌(大司憲)이 다 우리 문중의 조카들이다. 개국(開國), 정사(定社), 좌명(佐命), 좌리 공신(佐理公臣)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 집의 훈척(勳戚) 벌열(閥閱)들이다.
지금 내가 주먹을 들어 네 놈 두상을 깨고 길가에 쓰러뜨려 두 번 죽음까지 시켰다고 치자, 너희 일가붙이들이 고소하면 내가 구속을 될 터이지. 그러면 성 안에 가득 찬 내 친구와 친척들이 제각기 술병과 음식을 들고 와서 나를 위로할 것이다.
나는 취해서 복당에 드러누워 천하태평으로 코나 골면 될 것이다. 담당 관서에서 법에 따라 율령에 비추어도 내가 훈신(勳臣)의 적손(嫡孫)이니 사형은 감해질 것이다. 한껏 벌을 방아보았자 산수갑산으로 귀양을 가는 정도겠지.
그러면 서울의 벗들이 기생들과 악공들을 데리고 동교까지 나와 나를 전송하고 귀양지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올 것이다. 나는 호초이불을 덮고 해송죽을 마시며 백두산 사슴포와 압록강 물고기회로 입밧을 돋우며 지낼 것이다.
그러다가 왕세자 탄신 같은 나라의 큰 경사가 생겨 팔도에 대사면이 내리면 나는 곧 되돌아올 것이다. 내가 돌아오는 걸음에 동교에 다달으며 노상에 북망산이 보일 것이다. 그때 임자 없는 무덤이 있어 물어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헌부의 아전 아무개가 모씨에게 피살되어 여기에 묻히었다."
그런즉 너는 죽고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니 누가 잘 되고 누가 못 된 것이라 하겠느냐?"
이 말을 들은 금리(禁吏)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입심 한번 좋소. 내 그대를 관부에 고하지 않을 터이니 지금 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려주시오."
조선 선조 때 문장가이자 외교가로써 명성을 떨친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이야기 모음집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실린 입심 좋은 선비 김인복(金仁福)에 대한 글입니다. 김인복(金仁福)은 15세기 중엽에 살았던 장안에서 구변 좋기로 소문난 인물입니다.
그는 어두운 현실의 구석구석을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로 입심 좋게 일구어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는 재물과 권력에 기대어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비 김인복(金仁福)의 유수 같은 달변은 그런 세태에 대한 풍자(諷刺)입니다. <꽃사진: 옥살리스(oxalis) 사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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