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항상 곁에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인물을 이르는 고사성어 약롱중물(藥籠中物)

박남량 narciso 2016. 11. 7. 13:04


항상 곁에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인물을 이르는 고사성어 약롱중물(藥籠中物)



당나라 3대 황제인 고종(高宗 628∼683)의 황후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때의 이야기이다. 14세 때 2대 황제인 태종(太宗)의 후궁이 된 측천무후(則天武后)는 26세 때 태종이 죽자 여승이 되었으나 재색(才色)을 탐낸 고종(高宗)의 명에 따라 환속(還俗)하여 고종(高宗)의 후궁으로 있다가 고종(高宗) 6년(655)에 황후가 되었다.

그 후 고종(高宗)이 중풍에 걸리자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스스로 천후(天后)라 일컫고 수많은 명신(名臣)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고 전 황후의 소생인 태자를 폐하는 등 포악한 정치를 했다. 고종(高宗)이 죽은 뒤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친아들인 중종(中宗 4대) 예종(叡宗 5대)을 세웠으나 곧 폐하고 67세 때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주(周)라고 했다.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가 출현한 이 정변을 무주 혁명(武周革命)이라고 한다. 그 무렵 산서성(山西省) 사람 적인걸(狄仁傑 630∼700)이라는 청렴 강직하고 식견이 높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더없이 잔인하고 명석한 측천무후(則天武后)를 직간(直諫), 보필하여 어지러웠던 정치를 바로잡고, 민생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유능한 선비를 추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했다.

적인걸(狄仁傑)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원행충(元行沖)과 같은 박학다재(博學多才)한 인물도 있었다. 그 원행충(元行沖)이 어느 날, 적인걸(狄仁傑)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공(相公) 댁에는 맛있는 것이 많습니다. 혹 과식하시어 배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저 같은 쓴 약도 곁에 놔두십시오."

좋은 인재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良藥苦於口而利於病(양약고어구이리어병) 忠言逆於耳而利於行(충언역어이이리어행)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충언을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자 적인걸(狄仁傑)은 웃으며 말했다.

"君正吾藥籠中物(군정오약롱중물) 不可一日無也(불가일일무야)  자네야말로 바로 내 얄롱중물일세, 하루라도 곁에 없어서는 안되고 말고."



당서(唐書) 적인걸전(狄仁傑專)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약롱중물(藥籠中物)이다.

약롱중물(藥籠中物)이란 약농 속의 약품이란 뜻으로, 항상 곁에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인물(심복)을 이르는 말이다.
<꽃사진: 틸란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