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라는 고사성어 오손공주(烏孫公主)

박남량 narciso 2016. 11. 14. 11:17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라는 고사성어 오손공주(烏孫公主)



오손(烏孫)은 전한(前漢) 때 서역(西域) 지방에 할거하던 터키계의 유목 민족으로, 그 세력권은 천산(天山) 산맥 북쪽의 이시크를 호수 부근으로부터 일리강(伊犁河) 유역의 분지를 포함하여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르 강 상류의 나린 강 계곡에 있던 적곡성(赤谷城)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오손(烏孫)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성했던 흉노는 북방 몽골 땅을 근거지로 삼고 한(漢)나라를 끊임없이 침범했다. 그래서 한(漢)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흉노를 무찌르기 위해 건원(建元) 26년(B.C. 115) 장건(張騫)을 오손(烏孫)에 보내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0년 후 무제의 형인 강도왕(江都王)의 딸 세군(細君)을 공주로 꾸며 오손왕烏孫王)에게 출가시킴으로써 동맹은 더욱 굳어졌다. 이리하여 흉노는 한(漢)나라와 오손(烏孫)의 협공에 견디지 못하고 서역은 물론 한(漢)나라의 변경으로부터 북방 멀리 쫓겨가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서역 50여 이민족의 소국들은 한(漢)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 한(漢)나라는 이들 나라의 이반을 막기 위해 구자(龜玆)에 감독 사찰 기관으로서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를 두었다. 건국 이후 100년 이상 시달려 온 흉노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먼 이국의 이민족에게 주어진 오손공주(烏孫公主)는 망향의 노래를 부르며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專)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오손공주(烏孫公主)이다.

오손공주(烏孫公主)란 정략 결혼의 희생이 된 슬픈 운명의 여인이란 뜻으로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라는 말로 사용된다.<꽃사진: 털머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