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인가(出引歌)
풋고추 절이 김치 문어 전복 곁들여,황소주(黃燒酒) 꿀 타,
향단(香丹)이 들려 오리정(五里亭)으로 나간다. 오리정으로 나간다.
어느 년, 어느 때, 어느 시절에 다시 만나, 그리던 사랑을 품 안에 품고,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에- 어화둥개 내 건곤(乾坤)
이제 가면 언제 오랴, 오만 한(限)을 일러 주오.
명년 춘색(春色) 돌아를 오면 꽃 피거든 만나 볼까.
놀고 가세 놀고 가세, 너고 나고, 나고 너고만 놀고 가세.
곤히 든 잠 행여나 깨울세라, 등도 대고 배도 대며, 쩔래쩔래 흔들면서,
일어나오 일어나오, 겨우 든 잠 깨어나서, 눈떠 보니 내 낭군(郞君)일세
그리던 임을 만나 만단정회(萬端情懷) 채 못하여
날이 장차 밝아 오니, 글로 민망만 하오매라.
놀고 가세 놀고 가세, 너고 나고, 나고 너고만 놀고 가세.
오날 놀고 내일 노니 주야장천(晝夜長天)에 놀아 볼까.
인간 칠십을 다 산다고 해도
밤은 자고 낮은 일어나니 사는 날이 몇 날인가.
춘향가의 짝퉁 느낌을 주는 좀 특이한 경기 잡가입니다. 이 노래 속의 연인들은 마치 하룻밤 연애 이후의 이별 이벤트를 하는 것 같은 정서를 드러내는 특이한 분위기 입니다. 향단이에게 주안상을 들게 하여 오리정으로 나간다는 뜻에서 나갈 출(出)자를 쓰고, 떠나는 이 도령을 붙잡아 이끌어 들이려 한다는 뜻에서 이끌 인(引)자를 썼다고 전해집니다. 나가서 붙들어 이끄는 노래라 하여 출인가(出引歌)라고 부른 것입니다.
날이 밝으면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 다시 만날까 맘 졸이고 너랑 나랑 둘이서만 놀고 싶다는 바람이 깃들고 연인의 곤한 잠을 차마 깨우지 못해 서성이고 망설이는 모습과 심리는 요즘 연인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랫말 행간에 감정의 절실함이나 진지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건성건성 사랑의 제스처를 하면서 일단 이 순간을 놀고 보자는 유흥적 통속적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노랫말도 춘향가와 민요, 사설시조 등에서 구절구절 따다가 기워 엮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보기에는 그럴듯해도 진실성이 있는 노래는 아니고 유흥성이 전면에 부각된 노래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거짓 사랑과 거짓 이별이 진짜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지양의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 이지양 / 샘터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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