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촉석루와 신안 주씨 논개부인
임진왜란때 왜장을 껴안고 도도히 흐르는 남강에 투신 순국한 의암 논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부실이었습니다. 성은 신안 주씨이며 경상남도 장수군 주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암이라는 호는 사후에 내겨진 것입니다.
최경희의 정실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 최경희에게 자신이 죽은후 재색과 부덕을 겸비한 논개를 처로 맞아들일 것을 권유하였고 부인이 죽고난 후 몇 년이 흐른 후 논개는 최경회 현감과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최경회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진주성에서 왜군을 맞아 싸울 때 논개는 낭자군을 조직하여 치마폭에 돌멩이를 나르고 가마솥에 물을 끓여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에게 퍼붓는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왜군이 성안으로 들이닥치자 최경회는 다른 장수들과 모여 성을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할 것을 결의하고는 촉석루에 올라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절하고 미리 준비해 둔 임종시를 읊으며 남강에 투신합니다.
진주성문을 들어서면 촉석루 가기 전에 비석 하나가 외로이 서있습니다. 이 비석이 촉석루중삼장사기실비(矗石樓中三壯士記實碑)입니다.
矗石樓中三壯士 一杯笑指長江水 長江之水流滔滔 波不渴兮魂不死
촉석루위 마주 앉은 세 장사들은 한잔 술로 웃으면서 남강 물을 가리키네 남강 물은 밤낮으로 쉬지않고 흘러가니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넋도 없어지지 않으리
성이 함락되기 전 다른 부녀자들과 함께 성 밖으로 피신한 논개는 왜군들이 칠월 칠석 촉석루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열기위해 기생을 소집한다는 방을 보고서 진주의 수안이라는 기생을 불러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자신을 명단에 넣게 했습니다.
칠월 칠석날 논개부인은 곱게 화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연회에 참석해 왜장을 대취하게 만든뒤 춤을추며 연회장을 빠져나와 남강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바위로 왜장을 유인해 마디마디 가락지를 낀 손으로 왜장을 껴안고 강물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논개부인의 나이가 19살이었습니다.
논개가 뛰어내린 바위를 의로운 바위라 하여 의암이라 이름짓고 논개와 동일시하여 그의 호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현감 정주석은 비석에 명문장을 남겨 후세 사람들에게 사표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나라가 침략을 받아서 어지러울 때 구차하게 살지 않음이 쉽지 않고 열사로도 어려운 바라. 일개 여자가 대의를 판별하고 죽는 것을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같이 보았으니 어찌 그리 빛나며 매울 쏘냐. 당일을 상상해 보면 위엄과 늠름한 기가 사무쳐 해와 별같이 빛나도다. 어찌 그리 장할소냐. 지금 여기에 의기의 이름을 새겨 후세에 전함으로써 평생 공경하는 마음으로 뒤쫓아 갈 것은 지체 낮은 사람들의 바람이라 삼가 글로써 기록하여 남기나이다.
변영로의 논개라는 명시도 있다. 왜적에 대한 민족적 분노와 민족애 그리고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정 그리고 논개의 순국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민족과 역사의 영원성을 노래한 시이다.
논 개
거룩한 분노(憤怒)는 종교(宗敎)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情熱)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그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