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조신과 환몽설화

박남량 narciso 2008. 2. 12. 10:31



 조신과 환몽설화


 

          옛날 신라시대 때의 일이다.
          왕은 조신이라는 스님을 세규사라는

          절에 보내어 장사 관리인으로 삼았다.
          조신은 경내의 살림을 도맡아 열심히 하여

          절은 점점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둥근 달이 하늘에 높이 떠오를 때
          석탑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처녀를 발견하고 조신은
          그 처녀를 한눈에 좋아하게 되었다.
          조신은 다음날부터 낙산사의 관음보살에게
          석탑 앞에서 발견한 그 처녀와
          혼인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당해도 좋다고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빌기 시작했다.
          그러나 들리는 소문이라고는 그 예쁜 처녀가
          며칠 안에 혼인한다는 소식 뿐이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픈 조신은
          법당에서 슬피울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인지 생시인지 그 예쁜 처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조신을 흔들어 깨웠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평소 스님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다른 곳으로 시집가게 되었는데
          날마다 스님의 모습이 떠올라
          이렇게 찾아왔다고 했다.
  
          조신은 몹시 기뻐하며 세규사에서 나와
          그 처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40 년을 함께 하는 동안
          다섯 자녀를 두었지만 워낙 가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살아가기에 급급했다.
          명주땅의 해현령을 지날 때에는
          열다섯 살이 되는 딸이 굶어죽는 일이 있었다.
          조신이 슬피 울며 그곳에 딸아이를 묻자
          부인이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혈색이 좋고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비록 맛이 없는 음식이라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지금까지 지내왔으나
          이제는 아이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도
          미처 돌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년가약도 버들강아지처럼 바람에 날아가
          없어졌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헤어지고 만나는 것은 연이니
          이제는 이곳에서 각자 헤어져
          살기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헤어지자는 말이오?」
         「 그렇습니다.」
         「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 부부가 따로 두 아이씩 데리고 가기로 해요.
          저는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새벽 바람이 불어와 등잔불이 깜박였다.
          멀리서 닭우는 소리가 들릴 때
          조신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조신의 머리는 온통 새하얗게 변하고
          손이며 발 그리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했다.
         「 오 부처님, 제가 잠시 탐욕스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조신은 날마다 법당에 나가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다.
          얼마 후 꿈속에서 아이을 묻었던
          혜현령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문득 지난 일이 떠올라 그곳을 파보니
          놀랍게도 그곳에 돌부처가 있었다.
          조신은 그 돌부처를 절에 안치한 다음
          공덕을 닦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몽설화이다.
           평소의 어떤 생각 때문에 
           꿈속에서 일련의 사건을 체험하고 
           꿈에서 깨어나 참다운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설화를 환몽설화라고 하는데
           조신설화는 몽자류 소설의 
           근원 설화로서의 의의가 매우 크다. 

           이 설화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으로 
           고통의 근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적 가르침으로
           헛된 즐거움은 잠깐이고
           진리가 영원불변함을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