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조선조 임금의 조와 종의 의미와 기준

박남량 narciso 2008. 1. 24. 11:50



조선조 임금의 조(祖)와 종(宗)의 의미와 기준


 

              조선의 27 명의 왕들 가운데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7 명의 왕들에게 조라는 시호를 썼으며
              죽어서 왕으로 대접받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모두 종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왕의 시호는 살아 생전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사후 여러가지 역사적 평가에 의해
              정하여졌다고 하는데 왕조시대에는 신하나 백성들이
              감히 왕의 이름을 부르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래서 왕들의 생전에는 주상이나 전하라고 부르고
              사후에는 사당을 지칭하는 묘호나
              능을 지칭하는 능호로 불렀다.

              태조.태종.세종.세조.성종.선조와 같은 호칭은
              왕들의 이름이 아니다.
              이는 임금들이 죽은 후에 그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 사당에 붙인 칭호로서 이를 묘호라고 한다.
              조(祖)나 종(宗)은 사당이라는 뜻이 있다.
              살았을 때와 다르게 왕들에게 이런 이름을
              만들어 붙이는 것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왕실 사당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쓰기 위해서이다.

              묘호는 그 왕이 죽은 후 신주를 종묘에 올릴 때
              조정에서 대신들이 회의하여 추천하고
              왕의 결재를 받아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폐위되어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왕들은 묘호가 없다.

              왕의 호칭에는 묘호 외에도 사후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는 시호라는 것이 있고
              또 신하들이 그 왕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 올리는 휘호 혹은 존호라는 것도 있다.

              묘호에  조나 종을 붙이는 원칙을
              흔히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고 한다.
              예기에 공이 있는 자는 조가 되고
              덕이 있는 자는 종이 된다는 데 따른 것으로
              공이 많은 임금은 조(祖)
              덕이 많은 임금은 종(宗)을 붙인다는 것이다.
              조의 경우에는
              새로운 창업에 해당하는 업적이 있거나
              전쟁을 막아내어 나라를 구했다던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확립했다고 평가되어지는
              업적이 있는 왕에게 붙여지는 시호였다고 하며
              종의 경우에는
              선대 왕의 치적을 이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문물을 융성하게 한 왕에게 붙여지는 시호였다.

              예를 들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인조의 경우에도
              인조반정의 사건을 정통성 회복이라는
              창업에 버금가는 업적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애매한 원칙이다.
              공이 많은지 덕이 많은지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때 그때 정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조와 종을 나누는 기준이 불투명해졌다.
              조를 붙이는 것이 종을 붙이는 것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든 것이다.
              그래서 후계자인 왕이나 신하들이 아첨하느라고
              억지로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세조(世祖) 선조(宣祖) 그리고 순조(純祖)의 묘호는
              억지로 무리하게 정한 것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그런가하면 한번 정한 후에 다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인조(仁祖)의 묘호는 본래 열종이라고 정하였던 것인데
              아들인 효종이 불만을 표시하여 인조라고 고쳤다.
              영조(英祖)와 정조(正祖)의 묘호 역시
              원래 영종(英宗)과 정종(正宗)이었으나 189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친 후 종을 조로 고쳤다.

              정종(定宗)과 단종(端宗)은
              오래동안 묘호를 정하지 않고
              공정왕과 노산군으로 불리우다가
              숙종 때 와서 비로소 정종과 단종으로 정하였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쫓겨나고 죽은 후
              종묘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묘호가 없다.
              군이라는 것은 원래 왕자들이나 왕의 형제
              또는 종친부나 공신에게 주어지던 호칭이었는데
              그들이 왕자 시절에 받은 이름이다.
              이들에게는 도덕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문제가 컸었기에 왕족의 칭호가 붙여졌으며
              그들이 왕위에서 쫓겨난 후 다시 왕자의 신분으로
              강등되었음을 뜻하는 것일 게다.

              그와 반대로 즉위하여 통치하지는 못하였으나
              후에 왕으로 추존된 이들에게도 묘호를 올렸다.
              성종의 생부인 덕종 (德宗)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
              정조의 생부인 장조(莊祖)(사도세자)
              헌종의 생부인 익종(翼宗)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왕자의 신분이었으나
              죽은 후에 아들들이 왕이 되어
              국왕의 지위에 격상된 경우이다.
              그러나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이나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은 왕자가 아니었고
              또 왕위계승에 맞지 않아 왕으로 추존되지 못하였다.

              조와 종으로 죽은 왕을 부르는 것은
              삼국시대에 신라 무열왕이 사용하였으며
              고려는 태조 왕건 이후 계속 사용하였으나
              원의 간섭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