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녀목(貞女木) 이야기를 아세요
옛날 한 임금이 팔척이나 되는 나무를 뜰에 심어 놓고 방을 써 붙였습니다.
"이 나무를 뽑는 여인에게 천금을 주리라. 단 정녀(貞女)가 아니면 뽑을 수 없으리라."
그러자 소문을 듣고 장안의 부녀자들이 달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떤 여인은 바라보다 달안고 어떤 여인은 만져보다 물러나고 어떤 여인은 죽을힘을 써서 나무를 뽑아도 움직이지 않아 그냥 물러갔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내가 한번 뽑아 보겠습니다 하고 그 나무를 만졌는데 대번에 움직이기는 하였으나 넘어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여인이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여 이렇게 말하며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평생의 정조를 하늘이 아는 바인데 이제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 왔으니 죽는 것만 못하오!"
이를 지켜보던 당상관이 여인에게 물었다.
"비록 숨길 행실은 없으나 혹시 마음으로나마 사모했던 사람은 없었소?"
당상관의 물음에 여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 그러합니다. 어느 날 제가 문에 기대어 서 있는데 한 선비가 화살을 허리에 차고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그 용모가 매우 뛰어나 '저 선비의 아내가 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겠구나!' 하고 생각한 일은 있습니다."
당상관은 여인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으니 한번 나무를 뽑아 보시오."
여인이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저의 정절을 살피소서.'하고 나무를 잡고 힘을 쓰자 마침내 나무가 뽑혀 큰 상금을 받아갔다고 합니다.
조선 전기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잡록집(雜錄集)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실린 글입니다. 옛 성현들의 지혜와 해학이 담겨 있는 '한 여름밤의 고전 산책(박서림/샘터 2004)'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끝에 재미난 마무리의 글이 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정녀목(貞女木)을 서울 한복판에 세워놓고 공고문을 붙여 놓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남 앞에서 행동을 삼가고 모범을 보이기는 마음먹기에 따라 큰 어려움이 따르지 않지만 홀로 있을 때 스스로 삼갈 줄 아는 사람은 보기 드문 세상이 아닌가 합니다. <꽃사진: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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