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설화

절벽 위에 한이 되어 핀 능소화

박남량 narciso 2007. 7. 31. 13:42


절벽 위에 한이 되어 핀 능소화



맑은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는
호랑이가 되지 못한 억울함에
한 여인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는데
능소화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 옛적에 수호랑이 한 마리와
반인간 반호랑이인 암호랑이가 살았다

암호랑이는 진정한 호랑이가 되는 것을
꿈으로 키우며 지내 왔다.
진정한 호랑이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호랑이와 합방을 하여야만 했다


암호랑이는
산골마을 이진사댁에 태어나
연지라는 여자아이로 자라났고
수호랑이는 창주라는
아홉살 먹은 남자아이로 변신을 해
김서방네 머슴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며 바라보면서
한 마을에서 살았다.


창주라는 머슴이 들어온 후
김서방네 집엔 살림이 일고
경사가 겹쳐 김서방네 식구들은
창주를 가족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혼인의 나이에 접어들자
김서방은 창주가 욕심이 나서
창주가 연지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잡아둘 생각으로 둘의 혼사를 서둘렀다.


창주와 연지는 회심의 미소 속에 혼인을 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합방을 치르게 되었다.
창주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방을 엿보지 말기를 신신당부했다.




밤이 되었다
오랜 그리움에 오히려 머쓱하여 앉은 창주
부끄러움에 연지의 가녀린 어깨 떨림
운명의 시간은
촛불의 일렁임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마주친 눈길
그들의 그리움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말았다


그런데
어디에나 하지 말라는 것
꼭 하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있다
동네 아이들이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창호지를 뚫어 안을 들여다 본 것이다
커다란 수호랑이가
연지아가씨 몸에 엉겨 붙어있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놀란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불렀다.
합방의 꿈은 깨어지고
결국 수호랑이는
잡혀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 날부터
연지 아가씨는 뒷산 절벽 위
창주가 호랑이로 살았던 굴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 오르면 창주가 있을 것 같아
그를 만나겠다는 갈망으로
호랑이의 울부짖음을 환청으로 들으면서
무릎이 깨지고 손톱이 빠지고
피가 맺히다 못해 줄줄 흘리면서
오르고 오르다가 끝내 지쳐 다 오르지 못하고
절벽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녀의 한이 씨로 맺혀
싹이 트고 덩굴을 뻗더니
절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능소화를 피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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