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설화

구중궁궐의 꽃이라는 능소화

박남량 narciso 2007. 7. 30. 16:22

 


구중궁궐의 꽃이라는 능소화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그녀도 역시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번도 찾아 오지를 않았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겠지만
그녀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을까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 기거하게 되었다
빈은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너머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그리움에 지쳐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이었기에
빈으로서의 초상조차도 치루지 못한 채
담장가에 묻혔다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다고 한
그녀의 유언을 시녀들이 지켜주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다

 


이 꽃이 능소화라는 꽃이다
덩굴로 크는 아름다운 꽃이다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 하다
한이 많은 탓이 아닐까
아니면 한 명의 지아비 외에는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꽃 모습에 반해 꽃을 따다 가지고 놀면
꽃에 독이 있어
눈에 들어가면 실명을 한다고 한다
장미는 그 가시가 있어 더욱 아름답듯이
능소화는 독이 있어
더욱 만지고 싶은 아름다운 꽃이다.
한여름 눈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