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저서가 호평을 받아 곧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고사성어 낙양지귀(洛陽紙貴)

박남량 narciso 2015. 9. 2. 10:32


저서가 호평을 받아 곧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고사성어 낙양지귀(洛陽紙貴)


진(晉:265∼316)나라 시대의 일이다.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얼굴이 못생긴데다 언변도 없어 남과 아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서 쓸쓸하게 지냈다. 어려서는 글을 그리 잘하지 못했으나 일단 붓을 들면 구구절절 명문이었다.

그는 임치에서 부친의 격려로 학문에 정진하였고 제도부(齊都賦)라는 서사시를 1년 만에 완성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제도부(齊都賦)는 그의 고향인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의 풍물을 노래한 시이다. 때마침 누이동생이 후궁으로 봉해져 입궐하게 되었다. 가족들도 따라 하남성(河南省)의 낙양(洛陽)으로 거처를 옮겼다.

낙양(洛陽)은 중화문명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곳은 황하로 흘러드는 낙수(洛水) 유역의 북쪽에 위치해 낙양(洛陽)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周)나라가 이민족의 압력을 피해 도읍을 삼은 것이 인연이 되어 그후 후한(後漢), 서진(西晉), 후위(後魏), 수(隨) 등 13개 왕조가 도읍으로 삼은 도시이다.

낙양(洛陽)으로 거처를 옮긴 후 자신감을 얻은  좌사(左思)는 삼국시대 3개의 도읍인 촉(蜀漢)나라의 익주(益州), 오(吳)나라의 건업(建業), 위(魏)나라의 업(鄴)의 풍물을 읊은 삼도부(三都賦)를 10년 만에 완성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남들의 놀림을 받아왔던 그가 세 도읍의 활기찬 모습을 노래로 지어 세상의 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자 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조정에는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는데  좌사(左思)의 삼도부(三都賦)를 읽어 보고 반고(班固)의 양도부(兩都賦)와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반고(班固)의 양도부(兩都賦)는 동도주인(東都主人)과 서도객(西都客)간의 문답 형식으로 양도(兩都)의 장관을 묘사한 시이다.

후한(後漢) 때 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와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 삼도부(三都賦)는 당장 낙양(洛陽)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 환관 문인 부호 등 선비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끼느라고  洛陽紙價貴  낙양의 종이값이 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진서(晉書)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낙양지귀(洛陽紙貴)이다.

낙양지귀(洛陽紙貴)란 낙양의 지가를 올린다는 뜻으로 곧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됨을 이르는 말이다. 문장이나 저서가 호평을 받아 잘 팔린다는 말 또는 쓴 글의 평판이 널리 알려짐을 뜻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