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자신의 지혜를 믿고 독단으로 흐르기보다는 남의 지혜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박남량 narciso 2019. 10. 3. 12:57


자신의 지혜를 믿고 독단으로 흐르기보다는 남의 지혜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魏)나라의 문후(文侯=魏斯)는 천하의 지혜로운 자들을 모아 국력을 키운 군주로서 명군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문후(文侯)가 신하를 다스렸던 방법의 요체는 직무에 충실한 신하와 군주에게 충실한 인간을 잘 조화시키면서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군주의 측근에 머무르는 신하들은 종종 군주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여 유능한 인재를 배척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문후(文侯)의 측근에 있던 신하들은 오히려 문후(文侯)로 하여금 정치적 시야를 트이게 만들었고, 유능한 인재들과 사이좋게 지냄으로써 국가 체계의 강화에 기여했던 것입니다.

문후(文侯)가 신하인 기계(箕季)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계(箕季)의 집 담장이 무너져 있는데도 고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문후(文侯)가 물었습니다.
"어째서 무너진 담장을 고치지 않았는가?"

기계(箕季)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닙니다."

또 그 담장은 비뚤어져 있어서 단정치 못하였으므로 문후(文侯)가 또 물었습니다.
"왜 담장을 바로 잡지 않는가?"

기계(箕季)가 대답했습니다.
"원래 그러했사옵니다."

문후(文侯)의 시종이 뜰에 있는 복숭아를 따먹으려고 하자 기계(箕季)는 따먹지 말라고 막았습니다. 잠시 후 저녁 식사가 나왔는데 현미밥에 박나물국 두 가지로 초라한 밥상이 전부였습니다. 문후(文侯)가 기계(箕季)의 집을 나서자, 시종이 말했다.
"전하, 기계로부터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사옵군요."

그러자 문후(文侯)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과인은 기계로부터 네 가지 얻었노라. 첫째는 그 시기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은 농번기의 시기를 백성들로부터 빼앗지 말라는 것이며, 둘째는 담장이 원래 그러하다는 것은 구부러진 우리 나라의 국경선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며, 셋째 뜰의 복숭아를 따먹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서 위의 것을 취하는 것 즉 하극상을 금지시킨 것이며, 넷째 보잘 것 없는 식사를 내놓은 것은 백성들을 함부로 수탈하지 말라는 것을 과인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중국 서한(西漢)시대 학자 유향(劉向)이 편찬한 고사집인 신서(新序) 자사편(刺奢篇)에 나오는 글입니다. 목전의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문후(文侯)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때리면 그대로 울리는 것과 같은 문후(文侯)의 두뇌의 유연성은 신하된 입장에서 보면 말이 통하는 군주로서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문후(文侯)는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군주였으며 신하들과의 대화를 통해 신하의 지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훗날 한비자(韓非子 BC280?-BC233)는 명군의 자격으로서 '현명한 자로 하여금 생각하는 바를 말하게 하고 군주가 그것에 따라 판단하면 지혜가 매장되는 일은 없다.' 하였습니다. <꽃사진: 쇠비름채송화, 카멜레온, 포체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