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미리 몇가지 술책을 마련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교토삼굴(狡兎三窟)

박남량 narciso 2014. 5. 16. 07:30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미리 몇가지 술책을 마련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교토삼굴(狡兎三窟)





제(齊)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孟嘗君)은 무슨 재주든 자랑할 만한 것이 있으면 식객(食客)으로 받아주기로 유명했다. 맹상군(孟嘗君)이 식객(食客)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온 자가 있었다. 풍환(馮驩)이라는 거지였다.

맹상군(孟嘗君)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풍환(馮驩)은 식객(食客)으로 있으면서 고기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대고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가 하면 그럴듯한 집이 없다고 투덜댄 괴짜였다.

맹상군(孟嘗君)은 설(薛=山東城 東南地方)에 영지를 갖고 있었다. 식객(食客)을 부양하기 위해 설(薛)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아 빚을 받기 위해 누구를 보낼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풍환(馮驩)이 자청하여 그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할 때 풍환(馮驩)이 물었다.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맹상군(孟嘗君)이 대답했다.
"무엇이든 좋소. 이곳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

설(薛=山東城 東南地方)에 도착한 풍환(馮驩)은 빚진 사람을 모아서 차용증을 점검한 후 예상외의 많은 이자를 받았다.
징수가 끝나자 풍환(馮驩)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孟嘗君)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 모아 놓았던 차용증서를 불태워 버렸다. 빚진 사람들은 감격했다.

설(薛=山東城 東南地方)에서 돌아온 풍환(馮驩)에게 맹상군(孟嘗君)이 물었다.
"무엇을 사오셨는가?"
"此時馮驩曰  軍之不足則恩義也  以燒借書爲軍買恩義來
이곳에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맹상군(孟嘗君)을 위해 돈주고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이 말을 들은 맹상군(孟嘗君)은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일년 후 새로 즉위한 제(齊)의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산 맹상군(孟嘗君)이 재상(宰相)에서 물러나자 식객(食客)들도 뿔뿔이 떠나 버렸다. 풍환(馮驩)이 맹상군(孟嘗君)에게 영지인 설(薛=山東城 東南地方)에 가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였다. 맹상군(孟嘗君)이 실의에 차서 설(薛=山東城 東南地方) 영지에 도착하니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해 주었다.

맹상군(孟嘗君)이 풍환(馮驩)에게 말했다.
"전에 은혜와 의리를 사 왔다고 한 말 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풍환(馮驩)이 대답했다.
"狡兎有三窟  僅得免其死耳  今軍有一窟  來得高枕而臥也  請爲君復盤二窟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아(狡兎三窟) 죽음만은 면할 뿐입니다. 군께서는 아직 하나의 굴 뿐이니 베개를 높이하고 편안하게 주물실 수가 없습니다. 이제 두 개의 굴을 파실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굴을 완성하기 위해 풍환(馮驩)이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여 맹상군(孟嘗君)을 등용하면 부국강병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齊)나라를 견제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마음이 동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孟嘗君)을 불렀지만 풍환(馮驩)이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이 제(齊)의 민왕(泯王)에게 알려지게 되어 맹상군(孟嘗君)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宰相)의 자리에 복직시켰다.

두 번째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馮驩)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齊) 민왕(泯王)을 설득하여 설(薛=山東城 東南地方)에 제(齊)나라 선대(先代)의 종묘(宗廟)를 세우게 함으로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宗廟)에 갖다두게 했다. 선대(先代)의 종묘(宗廟)가 맹상군(孟嘗君)의 영지에 있는 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세 번째 굴까지 완성한 풍환(馮驩)이 말했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굴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군께서는 고침안면(高枕安眠)하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孟嘗君)은 재상(宰相)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큰 화를 입지 않았다. 풍환(馮驩)이 마련한 세 가지 보금자리 덕이었다.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간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난을 피함에 교묘함을 이르는 말이다. 같은 뜻으로 토끼는 숨을 수 있는 굴을 세 개는 마련해 놓는다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미리 몇가지 술책을 마련함을 비유하는 토영삼굴(兎營三窟)이 있다.

삼국지에도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말이 나온다.
유비(劉備)가 익주(益州)를 차지하기 전 법정이 익주(益州)의 유장(劉璋)의 편지를 가지고 유비(劉備)를 찾아온다. 법정은 유비(劉備)에게 익주(益州)를 차지하라고 강하게 권유를 한다.  이에 유비(劉備)가 자신은 여태껏 일정한 근거가 없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작은 산새도 나무 가지 하나를 차지하고 날쌘 토끼도 세 개의 굴을 파고 산다는데(狡兎三窟) 하물며 난들 왜 근거를 마련할 생각이 없겠는가."
유비(劉備)는 익주(益州)의 땅을 갖고 싶으나 익주(益州)의 유장(劉璋)이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집안(同宗)이기에 차마 뺏을 수 없다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