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일처리가 매우 능수능란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유인유여(遊刃有餘)

박남량 narciso 2017. 6. 2. 12:48


일처리가 매우 능수능란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유인유여(遊刃有餘)



전국시대 위(魏)나라에 최고의 소잡이 포정(庖丁)이 있었다. 한번은 문혜왕(文惠王)이 그를 불러 소를 잡게 하였다. 포정(庖丁)은 손을 놀리고 어깨에 힘을 주며, 발로 밟고 무릎을 굽힐 적 마다 칼질하는 소리가 쓱싹쓱싹 울려 퍼져 음악의 가락에 맞았다. 그 동작은 상림의 춤과 같았고, 그 소리는 경수의 악장을 연상케 하였다.


庖丁爲文惠君解牛(포정위문혜군해우) 手之所觸(수지소축) 肩之所倚(견지소의) 足之所履(족지소리) 膝之所踦(슬지소기) 砉然嚮然(획연향연) 奏刀騞然(주도획연) 莫不中音合(막불중음합) 於桑林之舞(어상림지무) 乃中經首之會(내중경수지회)

문혜군이 소를 잡는 포정(庖丁)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훌륭하구나. 솜씨가 어찌 여기까지 이를 수 있느냐?" 포정(庖丁)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文惠君曰(문혜군왈) 譆(희) 善哉(희선재) 技蓋至此乎(기개지차호) 庖丁釋刀對曰(포정석도대왈)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써 이는 기술보다 나은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보이는 것은 모두 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소의 온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臣之所好者道也(신지소호자도야) 進乎技矣(진호기의) 始臣之解牛之時(시신지해우지시) 所見无非全牛者(소견무비전우자) 三年之後(삼년지후) 未嘗見全牛也(미상견전우야)

이제는 다만 마음으로 소를 처리하고 있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은 멈추고 마음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큰 틈을 벌리고 그 속에 칼을 넣는 것은 본래의 생김새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힘줄이나 근육을 베는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뼈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方今之時(방금지시) 臣以神遇(신이신우) 而不以目視(이불이목시) 官知之而神欲行(관지지이신욕행) 依乎天理(의호천리) 批大卻(비대각) 導大窾(도대관) 因其固然(인기고연) 技經肯綮之未嘗微礙(기경긍경지미상미애) 而況大軱乎(이황대고호)

솜씨 좋은 소잡이가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살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이 칼로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칼날은 새로 숫돌에 간 듯 합니다. 원래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으나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良庖歲更刀(양포세경도) 割也(할야) 族庖月更刀(족포월경도) 折也(절야) 今臣之刀(금신지도) 十九年矣(십구년의) 所解數千牛矣(소해수천우의) 而刀刃(이도인) 若新發於硎(약신발어형) 彼節者有閒(피절자유한) 而刀刃者無厚(이도인자무후)

칼날은 아주 얇아서 그 사이에 넣으면, 뼈마디 사이는 널찍하여 칼날을 놀리는 데 여유가 있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에 밀어 넣어 여유있게 놀리는 까닭에 19년이나 써도 칼날은 여전히 숫돌에 간 듯이 예리합니다. 

以無厚入有閒(이무후입한) 恢恢乎其於遊刃(회회호기어유인) 必有餘地矣(필유여지의) 是以(시이) 十九年而刀刃(십구년이도인) 若新發於硎(약신발어형)

그러나 막상 뼈와 힘줄이 엉겨있는 곳에 다다르면 저도 늘 긴장합니다. 저는 눈을 그곳에 응시한 채 동작은 더디어 져서, 그 놀림이 아주 섬세해집니다. 그러다가 살덩이가 후두둑 아래로 떨어져, 일이 끝나면 비로소 마음이 놓이게 됩니다.

雖然(수연) 每至於族(매지어족) 吾見其難爲(오견기난위) 怵然爲戒(출연위계) 視爲止(시위지) 行爲遲(행위지) 動刀甚微(동도심미) 謋然已解(획연이해) 如士委地(여토위지)

그때서야 저는 칼을 든 채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보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흐뭇해져서 칼을 닦아 넣어 둡니다.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구나. 그대의 말을 듣고 나는 삶을 기르는 법도를 알게 되었다."

提刀而立(제도이립) 爲之四顧(위지사고) 爲之躊躇滿志(위지주저만지) 善刀而藏之(선도이장지) 文惠君曰(문혜군왈) 善哉(선재) 吾聞庖丁之言(오문포정지언) 得養生焉(득양생언)

사람이 몸을 기르고 생명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백정은 소의 자연스러운 신체구조에 따라 칼을 놀림으로써 효과적으로 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즉 자연을 거스르지 말고 무리없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입니다.


장자(莊子)의 양생주편(養生主篇)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유인유여(遊刃有餘)이다.

유인유여(遊刃有餘)란 칼날을 놀리는 데 여유가 있다라는 뜻으로 일처리가 매우 익숙하고 솜씨가 좋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곧 일 처리가 매우 능수능란함을 비유하는 말이다.<꽃사진: 카멜레온 포체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