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도읍지를 한양으로 하기까지
태조 이성계는 등극하여
왕씨 문제에 관하여는
가혹하게 다루었는데 왕씨들을
처음에는 여러 곳으로
귀양보냈다가
서로 연락할 것을
두려워하여
모두
한 섬으로 모아 놓으려고
하였다.
물론 왕씨를 모두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이것을 모르는 왕씨들은
모두 모여 배에
올랐다.
배가 육지에서 얼마큼
떠나
바다로 향할 무렵 사전에 계획한
대로
뱃사공이 배 밑바닥을 뚫어
놓아
모두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다만 그의 아들 무안군의 부인 아버지인
왕우에 한해서는 귀의군으로
봉하여
고려태조의 능을 지키게 하여 죽음을
면했다.
그날 밤 꿈에 고려태조가
나타나
내 자손을 죽인 것에
대하여
인과응보를
이야기하며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니
이성계는 이 꿈 때문에 때때로
고심하였다.
이때 생각한 것이
서울을 옮겨 보자
이다.
먼저 도읍터로 정한 곳이
계룡산이었는데
반대하는 상소가 많아 다시 정한
곳이
도선비기에 한양이 이씨의
도읍지라는
말이
있다하여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다.
무학이 어명을 받아 새 왕도를
찾아나섰다.
삼각산에 이어 남산을 올라가
보았다.
멀리 보이는 벌판을
바라보며
왕도로서 적당한 곳을 고르게
되었다고
쾌재를 부르며 잠시 쉬고
있는데
한 노인이 소를 타고
지나가다가
" 이놈의 소야,
미련하기가 무학이와
같구나.
바른 길을 버리고
굽은 길을 찾아 가다니, 이랴
"
무학은 깜짝 놀라 노인을
보니
범상한 노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무학이 벌떡 일어나 노인앞으로
달려가
절을 올리고 소인이 무학이란
놈이오니
노인장께서 인도해 달라고 간청을
하니
노인은 채찍으로 한 곳을
가리키면서
서쪽으로
십리를 더 가면 알
일이다.하고
길을 재촉하여 떠나 버리는
것이었다.
무학은 노인이 가르킨 곳에
이르니
고려 때 남경부가 있던 그
자리이니
이곳에 새 왕도를 정할 수가
없다하여
다시 삼각산에 올라가 살피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백운대에서 산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니 산세가 무척 마음에
들어
궁궐터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비석이
보였다.
무학은 비석 쪽으로
달려갔다.
"
무학이 잘못 찾아 이곳에 당도할
것이다."
라고 새겨져 있는 글을 읽어
내려가든
무학은 신라의 고승 도선의 신통력에
놀라 머리가
숙여졌다.
이렇게 하여 다시 산세를
살펴
백악산 밑을 도선비기의 명당이라고
생각하여 인왕산을 진산을
삼고
백악산 남산이 용호가 되어야
한다고
도읍지로
아뢰니
정도전이 예로부터
제왕은
남쪽으로 자리하여 나라를
다스려왔다고
동향을
반대하니
그때 다시 잡은 자리가 북악산
밑으로서
지금의 경복궁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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