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인연 그리고 석왕사
강원도 안변 설봉산 깊은
골짜기에
이름 모를 큰 토굴이
있었다.
이곳에는 어디서 왔는지
근본을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중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은 예언을 잘 하고
영험이
있다 하여 일대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성계가 무술을
연마하며
명산대찰을
두루 돌아다닐
때
안변에 명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학을 찾아왔다. 무학은 반가이
맞이하며
"
젊은 분이 무슨 일로 오셨소?
"
" 명승이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소이다."
"
집도 절도 없는 엉터리
중이온데
명승이라니 잘못 찾아 온 것
같소이다."
" 과히 꺼려 마시길 바라오.
"
무학은 매우 반기는 표정으로
물었다.
" 무슨 말씀이신지
"
" 꿈 이야기를 하러
왔습니다.
해몽을 좀 해 주시면
합니다.
꿈에 우연히 쓰러진 집에
들어갔다가
서까래 셋을 등에 짊어지고
나왔는데
무슨 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
무학은 잠시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더니
' 세 서까래를 짊어졌으니 왕자가
틀림없소이다.
후일 왕가와 인연이 있을 꿈이외다. 자중하시오.
"
야심 많은 이성계는 마음 속으로
기뻐하였다.
이성계가 태조로 등국한
후
무학을 왕사로 삼고 그가 머물었던
토굴터에
석왕사라는
절을 지어
주었다.
석왕사는 현재의 북한지역 강원도 안변군
설봉산에 있는
대가람이었다.
서산대산의 설봉산석왕사기에
의하면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에 왕업을 이루기
위한
기도처로서 응진전을 세웠다고
전하며
응진전은
일제시대의 엽서 사진에는
응진당으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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