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멸망과 최영
고려는
망하는구나.
최영이 탄식을 하며 왕을
모시고
개성 화원으로
들어가니
휘하에는 50여명의 군졸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왕이 있는
화원은
고립상태로
되어갔다.
화원에는 왕과 최영의 딸인 영비
그리고 최영 등 몇 사람만이 남아
최후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원 밖에서는 사면초가로
위협하니
고려 최후의 날은
시시각각으로
죄어 오고 있었다.
최영이 어전에
나아가
"
전하 신이 나가
죽겠습니다.
종묘사직을 잘 보전하소서
"
왕은 차마 최영을 내 보낼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최영의 손을
잡으며
" 나만 남겨두고 나가면 사직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 울먹이며
차마
최영의 손을 놓지
못한다.
영비도 따라
울며
"
아버지, 충성을 다할 시각이
다가온
듯 하옵니다. 소녀는 전하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할까 하옵니다
"
하며 결연히 말할
때
이성계 휘하의 선봉장이
들어왔으나
최영을 보자 서 있을
뿐이었다.
최영이 한발 한발
걸어나갔으나
아무도 감히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최영은 역적이란 죄목으로
귀양갔다가
두 달 후에
처형되었다.
이날 형장에서의 최영의
태도는
너무도 당당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도 남음이
있었다.
최영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 철시를 하고
슬퍼하였다.
시체를 버린 곳에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고
지나갔다.
최영이 최후를 마칠
때
" 내가 만약 조금이라도
남에게
억울한 일을 했으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다 " 하고
죽었는데
과연 그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최영의 무덤을 적분이라고
불렀다.
후일 변계량이 최영의 충성을
기리는
시를 읊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충성심을 북돋았다.
舊威匡國髮星星
學語街童盡識名
一片丹心應不死
千秋永興太山橫
위엄을 떨쳐 나라를 구할 때
백발이
성성했구나.
삼척동자도 모두 그의 이름을 알고
있소.
한 조각 붉은 마음 영원히 죽지
않아
그 이름 천추까지 태산과 같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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