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의 사가재기(四可齋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한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문장가로서 동국(東國)의 시호(詩豪)요 시성(詩聖)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 조정을 따라 강화도에 왔다가 이때부터 강화도에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말년에까지 이어져 개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끝내 객지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사가재기(四可齋記)는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초월하고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는 이규보(李奎報)의 마음이 뚜렷하게 나타난 작품입니다. 이규보(李奎報)가 발견한 네 가지의 즐거움이란 시골에서 사는 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 이규보(李奎報)는 이를 통하여 한없이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정신적인 만족을 누리는 이규보(李奎報)의 생활태도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나의 부친이 일찍이 서쪽 성곽 밖에 별장을 두었다. 그곳은 계곡이 으슥하고 경지(境地)가 후미져서, 하나의 다른 세상을 이루어놓은 것같이 좋았다. 나는 그 별장을 물려받은 뒤, 자주 왕래하면서 글을 읽으며 한적하게 지낼 곳으로 삼았다.
밭이 있으니 갈아서 식량을 마련하기에 적합하고, 뽕나무가 있으니 누에를 쳐서 옷을 마련하기에 적합하고, 샘이 있으니 물을 마시기에 적합하고, 나무가 있으니 땔감을 마련하기에 적합하다. 나의 뜻에 맞는 것이 네 가지가 있기 때문에 이 집을 사가(四可)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또 녹봉이 많고 벼슬이 높아 위세를 부리는 자는 얻고자 하는 것이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거니와, 나 같은 사람은 곤궁하여 평생을 돌아보아도 백에 하나도 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제 갑자기 내 뜻에 맞는 것을 네 가지나 얻었으니, 그 얼마나 분에 넘치는 일인가? 무릇 성대한 음식을 먹는 것도 명아주국(藜羹)에서 시작하고, 천 리를 가는 것도 문 앞에서 시작한다. 이처럼 일은 대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내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전원의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곧 그것은 세상 일을 팽개치고, 옷을 떨치며 발(足)을 싸서 옛 전원으로 돌아가 늙는 것이다. 그곳에서 태평성대의 늙은 농부가 되어, 땅을 두드리며 배를 두드려 성군의 가르침을 관현(管絃)에 실어 노래를 부른다면, 역시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일찍이 이 집에서 시 세 수를 지었다. 시집(詩集) 가운데 있는 서교초당시(西郊草堂詩)가 바로 그것이다. 그 한 글귀는 이러하다.
快哉農家樂(쾌재농가락)
歸田從此始(귀전종차시)
상쾌하구나. 농가의 즐거움이여.
전원에 돌아가 사는 것은 이제 시작이라네.
이것이 참으로 나의 뜻이다.
昔予先君。嘗置別業於西郭之外。溪谷窅深。境幽地僻。如造別一世界。可樂也。予得而有之。屢相往來。爲讀書閑適之所。有田可以耕而食。有桑可以蠶而衣。有泉可飮。有木可薪。可吾意者有四。故名其齋曰四可。且祿豐官重。乘威挾勢者。凡所欲得無一不可於意者。若予則旣窮且困。顧平生百無一可。而今遽有四可。何僭如之。夫大牢之享。始於藜羹。千里之行。起於門前。蓋其漸也。予居是齋也。若有得田園之樂。則其唾棄世網。拂衣褁足。歸老故園。作大平農叟。擊壤鼓腹。歌詠聖化。以被于管絃。亦何有不可哉。嘗於是齋。著詩三首。詩集中有西郊草堂詩是已。其一句云。快哉農家樂。歸田從此始。是眞予志也。번역문은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정병헌,이지영/돌베개/1999)>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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