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의 서설홍청(鼠齧紅菁)

박남량 narciso 2018. 3. 5. 15:17


우리 미술관 옛그림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60)  서설홍청(鼠齧紅菁)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60)은 남이 흉내내지 못할 기인이었다고 합니다. 최북(崔北)은 별호로 칠칠(七七)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인 북(北)을 반으로 쪼개서 지었다는 설과 최북(崔北)이 죽었을 때의 나이가 49세인데 이때 죽을 것을 알고 칠칠(七 x 七 = 49)로 정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은 서설홍청(鼠齧紅菁)에서는 아호를 생은재(生隱齋)라고 썼습니다. 생은재(生隱齋)라는 뜻은 '생을 은밀하게 도모하는 지경'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생은재(生隱齋) 최북(崔北)이 그린 서설홍청(鼠齧紅菁)은 쥐가 붉은 순무를 갉아먹는 모습이지만 볼썽사납지 않고 볼 만한 그림입니다. 땅속 뿌리 열매인 순무에 올라탄 쥐는 마치 실뿌리가 자자한 무의 아래쪽을 향해 포복하듯 혹은 큰절하듯 무를 갉고 쏠아댑니다. 그림 속의 무가 홍당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설치류인 쥐가 자라는 이빨로 홍복의 상징인 순무를 쉼 없이 갈고 쏠아대는 것은 그대로 복락(福樂)을 집안에 들여 쌓으라는 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북(崔北)은 생기발랄한 표현을 위해 순무는 허공엔 듯 무청이 들리고 그런 순무의 아랫도리를 쏠아대는 쥐는 눈빛에 총기가 어리고 털이 촘촘하게 서서 함치르르합니다. 무의 아래쪽을 향해 쥐의 머리가 향하고 순무의 무청을 향해 쥐의 아랫도리가 마주합니다. 쥐꼬리는 호기롭게 순무의 푸른 무청과 두동지듯 어울리는 맛이 새뜻합니다.


최북(崔北)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문인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최북가(崔北歌) 즉 "최북을 노래함"에서 화가의 어려운 처지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최북이 장안에서 그림을 팔고 있는데 평생 오두막 한 칸에 사방 벽이 비었구나
문 닫고 온종일 산수를 그리고 있으니 유리안경 하나에 나무필통 하나 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