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국화(菊花)

박남량 narciso 2018. 4. 20. 13:22


우리 미술관 옛그림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국화(菊花)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국화(菊花)입니다. 국화는 서리 찬 가을에 다른 꽃들이 다 시들어갈 때 거만하고 고고하게 홀로 꽃을 피운다 하여 오상고절(傲霜高節)이라고도 합니다. 추위를 이겨내듯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본분을 지켜내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심사정(沈師正)의 국화꽃을 보면 뭔가 깃들 듯이 빠져나간 허전함과 그 삐져나간 빈자리로 가만히 차오르듯 번지는 가을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울 듯 기울어진 국화는 다시 허망을 짚고도 능히 꽃대를 곧추세울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쓰러지려는 것이 아니고 기울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심사정(沈師正)의 국화(菊花)는 서릿발 속에서 고개 든 국화의 외로운 절개를 보여주는 최고의 묵국(墨菊) 중 하나입니다. 오른쪽에 바위를 두고 그보다 더 큰 국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바위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화와 짝을 이룹니다. 국화 앞쪽으로 뽀족이 솟은 식물은 바랭이라는 잡풀입니다. 바랭이는 추위가 닥치기 무섭게 금방 시들고 마는 잡초라 국화의 절개와 대조를 이룹니다.


국화꽃이 바위보다도 훨씬 크게 표현된 점이 인상적입니다. 물기를 담뿍 머금은 흥건한 붓질로 화가는 단숨에 그림 속의 국화 꽃잎들을 그려냈습니다. 번짐이 많은 축축한 필치에서 통통한 국화 꽃잎이 만져지는 듯할 뿐 꾸밈도 기교도 없이 담백하고 소탈함을 느끼게 합니다.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봐야 할 이 그림은 어쩌면 뼈아픈 고독의 삶을 살았던 심사정(沈師正)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위만큼이나 냉랭한 세파 속에서 그는 나홀로 견뎌야 했고 그 외로움을 그림으로 달래야 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