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

박남량 narciso 2017. 4. 7. 14:56


우리 미술관 옛그림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


어려서부터 여신동(女神童)으로 불리던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는 여성적 자아가 투영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는 말 그대로 날짐승을 부러워하며 쳐다 본다는 뜻입니다. 뜰밖에 지팡이를 든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과 손을 잡고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자라는 점이 흥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 소녀야말로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자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그녀의 또다른 자아라고 합니다. 자유로이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부러워 한 것이 아닐까요.

조선시대 문인화(文人畵)에 있어서 여자가 그림에 등장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최초로 사내아이가 아닌 여자아이가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그림은 대부분 화보풍의 산수를 그린데 비해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는 주변의 실경(實景)이 등장하고 있어 조선 후기에야 나타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나 풍속화(風俗畵)보다 선구적인 면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아이한테 교육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안 지어 줬다는 조선시대에 천재로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 간 허난설헌(許蘭雪軒)입니다. 혼인하였으나 노류장화(路柳墻畵)의 풍류를 즐기는 남편의 바람기 외에도 시어머니와의 계속된 갈등 역시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달은 가정의 참화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으로 시름을 달래던 나이 27세 어느 날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집안 사람들에게 유언과 비슷한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今年乃三九之數(금년내삼구지수)  今日霜墜紅(금일상추홍)
금년이 바로 3·9수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작품을 모두 소각하였습니다. 그의 시(詩)와 작품들은 친정집에 있었는데, 소각하라고 하였으나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동생 허균(許筠 1569-1618)이 이를 보관했다가 그녀가 죽은 후 허균(許筠)이 명(明)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蘭雪軒)이 간행되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