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심사정의 <선유도(船遊圖)>

박남량 narciso 2016. 6. 9. 15:17


우리 미술관 옛그림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선유도(船遊圖)>


성근 대발로 엮은 집이 있고 풍랑이 있어 이리저리 바다로 다 넘어질 듯한데 마치 사랑방에 둔 듯이 네모난 서안 위에 놓인 두 꾸러미의 서책, 붉은 꽃을 꽂은 꽃병이 하나 그리고 대접과 잔이 한두 개 있습니다. 천 년을 산다는 학이 한 마리 늙은 나무등걸 위에 서 있습니다.

물결이 배를 삼킬 듯 사나운데 배 앞쪽에 앉은 두 선비는 경이로운 평정 속에 있습니다. 굽이치는 파도, 요동하는 배, 중심을 이동하는 학, 삿대를 물 속에 깊이 박는 사공, 심지어 늙은 나무등걸조차 꿈틀거리는 듯 모두가 움직임 속에 있지만 오직 두 명의 선비만이 먼 곳에 시선을 두고 고요한 몽상에 잠겨 있습니다.  

바람을 잠재울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물결을 보십시요. 물결은 거대한 용 모양으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배바닥으로 앞쪽 물결은 용의 머리 부분입니다. 두 사람이 마냥 태평스럽게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던 이유를 알 만 합니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죠. 그러면 두 사람은 신선입니다. 신선은 학을 타고 다닙니다.

화가는 파도에 휩싸인 조각배를 통해 자신의 신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무모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조각배에 실린 서책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영락한 문인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통렬한 농담이 아니었을까요.

"배 위의 매화나무와 학은 배를 타고 있는 선비 중 한 사람이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임을 짐작하게 한다. 임포는 평생 처자도 없이 황주의 고산에 혼자 은거했던 시인이다. 그는 초당 주위에 365그루 매화를 심어놓고 학을 기르며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매화 아내에 학 아들(梅妻鶴子)를 가졌다고 말하곤 하였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는 화가인 심사정(沈師正)이 밀려드는 세파 위에서 임포를 꿈꾸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사정(沈師正)의 가문은 빛났습니다. 증조부 심지원은 영의정, 조부는 부사를 지낸 심익창이고 아버지는 선비 화가인 심정주입니다. 그러나 조부 심익창이 노론과 소론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당시 왕세자였던 영조를 시해하려다 실패하여 역적이 되었습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후대 손자뻘 되는 이가 쓴 화가의 묘지명에는 그의 삶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50년 동안 걱정으로 지새우며 낙이라곤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 가운데서도 하루는 붓을 주지 않는 날이 없었다. 몸이 불편하여 보기 딱할 때에도 물감을 다루면서 궁핍하고 천대받는 쓰라림이나 모욕받는 부끄러움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 거사가 이미 세상을 떠났건만 집이 가난하여 시신을 염하지도 못했다. 후손이 여러 사람의 부의를 모아 장례 치르는 것을 도왔다. ..... 애달프다, 뒷사람들이여, 이 무덤을 훼손치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