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병국도(病菊圖)

박남량 narciso 2018. 7. 16. 16:45


우리 미술관 옛그림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  병국도(病菊圖)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병국도(病菊圖)입니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가난했습니다. 서른 넘어 친구들이 남산에 마련해준 초가 한 채를 얻었는데 문설주가 낮아 드나들 때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인상(李麟祥)은 집에 이름을 붙이기를 능호지관(凌壺之觀)이라고 불렀습니다. 방호산을 능가하는 경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서출(庶出)이었습니다. 학문은 높아도 벼슬이 미관말직에 머물러 배운 자의 한이 뼈에 사무쳤으니 뜻을 펼 수 있는 세상은 없었습니다. 한탄과 좌절은 그의 심신에 죽음의 그늘을 드리우게 하였습니다.

삭풍에도 꿈쩍 않고 홀로 피는 국화입니다. 서릿발 속에서도 꼿꼿하다 해서 오상고절(傲霜孤節)입니다. 그런데 병국도(病菊圖)에 담긴 그의 국화는 키가 훤칠하나 힘이 없고 출 늘어져 있고 색채마저 거세된 듯합니다. 아예 정신줄을 놓은 채 겨우 버티고 있는 모양새가 처연해 보일 정도입니다. 테두리 안의 채색을 하지 않는 갈필(渴筆)의 구륵법으로 그린 국화는 채색을 채우지 않음으로 창백하고 초췌해진 국화의 느낌이 유난스러워집니다.

그림 속에는 국화 두 그루가 바위를 울타리 삼아 제법 크게 자랐습니다. 가을 끝자락에 그윽한 향기를 품은 튼실한 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향기를 안고 죽을지언정 삭풍에 꽃잎을 떨구지 않는다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 중 하나가 아니던가요. 하지만 줄기는 꺽이고 꽃송이는 대롱에 매달려 있는 듯합니다. 잎사귀는 시들어 오그라들고 튼실했던 줄기마저 쇠잔해 기력을 잃었습니다. 시든 국화꽃 향기인들 오죽할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세 좋게 뻗은 대나무가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강인함을 상징하는 국화의 처지가 말이 아닙니다.

능호관이 사연을 적었습니다.
"남계(南溪)에서 어느 겨울날 우연히 병든 국화를 그리다."
남계(南溪)는 그가 찰방 벼슬을 했던 함양을 지칭합니다. 몸이 쇠약해 관직을 그만 둘 무렵 국화를 심었는데 오래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보니 국화는 속절없이 시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자신의 처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 우울과 울분이 가슴을 울컥하게 했습니다. 바위 곁에서도 쉽게 허리를 꺾지 않고 꽃 모양새를 잃지 않는 것은 쇠약해진 몸이지만 정신의 미소만은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승리처럼 보입니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병국도(病菊圖)를 그리고 시(詩)를 한 수 지었습니다.
衰花猶不落(쇠화유불락)
新花又嚬愁(신화우빈수)
晩來風更急(만래풍경급)
顚倒不勝秋(전도불승추)

시든 꽃 떨어지진 않아도
새로 꽃핀들 또 시름지을 뿐
뒤늦게 바람 다시 불어오니
가을을 못 이겨 고개 떨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