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필요합니다

박남량 narciso 2016. 12. 7. 11:02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힘은 아주 강력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얼굴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는 성녀 마더 데레사(Mother Teresa 1910-1997)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독일군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같이 포로생활을 했던 어떤 사람이 그 악몽을 함께 겪었던 수용소 동기를 찾아 갔습니다.

"독일 나치군을 이미 용서했나?"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래."

"나는 아직 그들을 용서하지 못했네. 그들을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은 증오로 타오르네."

그러자 그 친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자네는 지금도 그들의 감옥에 갇혀 있는 거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네."


우리의 적이란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기도의 정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세상은 없습니다. 용서에 대해 성경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집회서 28,2-3)

송봉모의 <상처와 용서>에서 용서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 두 가지를 들라면 죄를 안 짓는 것과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일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용서는 상대방이 뉘우쳤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못한다는 것은 마음이 옹졸해졌다는 것입니다. 옹졸해지고 싶어서 옹졸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서 오그라진 것입니다. 달마 대사도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마음, 마음, 마음이여! 참으로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으니."<꽃사진: 티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