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안성 고을 여사당(女寺黨) 바우덕이 이야기

박남량 narciso 2016. 8. 5. 10:29


안성 고을 여사당(女寺黨) 바우덕이 이야기

걸립패(乞粒牌) 야당걸전(耶黨乞錢}

마을풍물패가 발전하여 걸립패가 되기도 하고 아예 사찰에서 신표를 주어 걸립패를 꾸리기도 했다
<사진: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 주강현 / 한겨레신문사 / 1996>


여사당(女寺黨)이란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면서 소리와 품을 팔며 생활하던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남사당패에서 연유되는 말입니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입니다.<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 주강현 / 한겨레신문사 / 1996>에 '그 광대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글에 여사당 바우덕이 이야기가 있어 옮겨 기립니다.

가장 천대받는 계급의 사람들이었던 사당패는 사회에서 소외된채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면서 유랑생활을 했습니다. 떠돌던 사당패가 겨울이면 되돌아와 청룡사에서 아기도  낳고 연희도 가르치고 휴식도 취하면서 이듬해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청룡사는 절에서 받은 신표를 들고 수많은 사당패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안성장터는 물론이고 여러 지방을 떠돌면서 연희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본산입니다. 한겨울에는 그들의 돌아와 시끌벅적했을 것 같습니다.

방년 21세, 꽃다운 나이, 안성 고을의 이름난 여사당 바우덕이가 젊디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미색이 아름다워 양귀비를 능가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였지만 죽음의 신만은 뿌리칠 수 없었는가 봅니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청룡사 개울에 뿌렸습니다.

뭇남자들치고 바우덕이 한번 만나는 게 소원 아닌 자가 없었습니다. 바우덕이는 소고에 특히 능했습니다. 남사당패는 개다리패, 오명선패, 심선옥패, 안성 복만이패, 안성 원육덕패, 이원보패 같은 이름만 전해지고 있을 뿐인데 그중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던 청룡사 사당하면 늘 떠오르는 인물이 바우덕이입니다.

그의 남편 역시 남사당이었습니다. 바우덕이가 죽을 당시 그의 남편은 나이 마흔두 살의 장년이었습니다. 떠꺼머리 수총각으로 이십 년 세월을 보내다가 느지막이 얻은 부인이었습니다. 어린 아내가 죽자 그는 매일깥이 바우덕이와 놀던 바위에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아내 때문에 실성했다고 하면서 끌끌 혀를 찼습니다. 그는 바위에 올라가서는 나팔을 불고 장고를 치거나 때로는 노래를 불렀고 읊기도 하였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그 역시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올라섰던 바위를 나팔을 불었던 바위라는 뜻으로 나팔바위라 불렀습니다. 울바위, 떵뚱바위라고도 부릅니다.

바우덕이는 100여 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으나 사람들이 그를 빗대어 시를 지은 노래만큼은 지금도 안성땅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를 가네


<기산풍속도첩>의 남사당패 줄타기

안산의 청룡사 대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