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화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지금 있는 곳에서 바로 시작하세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은 흑인 인권옹호를 위해 싸운 선구자로 유명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흑인 사회의 대표적인 리더로서 활동한 미국의 교육학자로서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 1856-1915)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미국 대통령이었을 당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노예로 태어나 아홉 살의 어린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탄광에서 하루 12시간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링컨이 노예들을 해방하자 자유로운 몸이 되어 돈 한 푼 없는 이 소년은 흑인이 들어갈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학교 중 버지니아의 햄튼학교(Hampton Institute)에 입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8백 Km를 여행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학교를 찾아 떠나던 첫날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낡은 마차로 일행과 함께 우리는 버지니아의 산악지대를 빠져나갔습니다. 저녁에 우리는 도로변의 한 여관 앞에 멈췄습니다. 일행은 모두 백인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묵을 방을 배정받은 다음 식사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힘없이 여관주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땐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잠자리를 얻어볼까 해서였습니다.
"아저씨, 저도 방 하나 주시겠습니까?"
여관 주인은 화난 얼굴로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더러운 깜둥이에게 줄 방은 없다."
나는 그 긴 밤을 어찌어찌해서 춥지 않게 지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처음으로 피부색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도보로 여행하고, 애원해서 마차를 얻어 타기도 하면서 겨우겨우 리치먼드 마을에 도착했는데 목적지인 햄튼까지는 아직도 150 Km나 남아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지치고, 굶주렸으며, 몸도 더러웠습니다. 게다가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고, 어디서 묵어야 할지 정말 막막했습니다.
여러 곳을 알아보았지만 한결같이 돈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식당 앞에 멈추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먹음직스런 닭튀김과 사과푸딩을 팔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음식을 맛볼 수만 있다면 돈을 얼마든지 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었으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밝자 나는 근처에서 커다란 배를 보았습니다. 그 배에서는 쇳덩이를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직접 선장을 찾아가 식사비 대신에 하역 작업을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그때 정말 끔직하게도 배가 고팠습니다. 백인치고는 친절했던 그 선장은 나를 이해해주었습니다. 나는 그처럼 맛있는 아침식사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후에야 나는 햄튼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곧바로 학교 여선생님을 찾아가 내 소개를 했습니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목욕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했으니 당연히 나쁜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대번 나의 입학을 거절했습니다.
내가 문 앞에서 몇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자,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쪽에 있는 교실이 지저분하다. 자, 여기 빗자루가 있다!"
나는 일생 일대의 기회로 생각하고 교실을 빗자루로 세 번씩이나 쓸어냈습니다. 그리고 걸레를 찾아 네 번씩이나 닦았습니다. 청소를 끝내고 나는 여선생님께 보고했습니다. 그녀는 북부 출신의 양키로, 청소를 검사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마룻바닥과 쟁반 등을 검사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어 탁자와 의자들을 훔쳐보았습니다. 먼지 하나 없이 청소된 교실을 보고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좋아, 시험삼아 너를 받아들이겠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기숙사비와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난로에 불을 지폈고, 저녁시간부터 밤늦게까지 모든 교실을 청소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나는 결국 해냈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어떤 것들일까요? 배고픔, 교육의 기회 박탈, 인종차별입니다. 우리는 인종차별이 아니라 금수저나 은수저 운운일 것입니다. 노예제도로부터 몸을 일으켜 성공한 흑인 부커 T. 워싱턴은 미국 흑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일어나고 백인들은 그들의 노력에 어울리는 평가를 하고 판단해주기를 바라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시대가 변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바로 시작하도록 하였습니다.
'삶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착각은 그림 속의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0) | 2017.03.17 |
---|---|
인생의 행복과 성공도 결국에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0) | 2017.03.08 |
마음이 탐욕으로 물든 사람은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0) | 2017.02.22 |
내면을 수양하듯이 외양을 가꾸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0) | 2017.02.17 |
나눔이 이웃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화 그리고 행복의 꽃씨가 되어 자라고 있습니까 (0) | 2017.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