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설화

수줍음이 많은 소녀의 넋 꽈리

박남량 narciso 2007. 4. 23. 13:44


수줍음이 많은 소녀의 넋 꽈리

 

 

수줍은 듯 붉게 물든 열매. 꽈리.
조선시대 때의 일이다.
어느 마을에
가난하게 자랐지만 밝은 성격에
마음씨 착한 소녀가 살았다.
꽈리는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티없이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온 동네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꽈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또래의 소녀가 있었는데
세도 높은 양반 집의 딸이라
거만하였으며 심술궂고 질투가 많았다.

 

 

 어느 봄 날
들녘에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숲에서는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 화창한 날씨에
나물 캐러 와서 기분이 좋아진 꽈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꽈리의 노래는
산들바람을 타고 활짝 핀 꽃들이
곱게 웃고 있는 들녘을 떠돌았다.



「 이 아름다운 노래가 어디서 들려오는고?
선녀의 노래소리 같구나.
가서 이 노래를 부르는 소녀를 데려오너라 」
마침 고을을 지나던 원님이
꽈리의 노래소리를 듣고는 꽈리를 불렀다.
그러나 꽈리는
몹시 수줍음을 타는 소녀였다.
「 어디 사는 누구인고? 」
꽈리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원님은 돌아갔고
그 소문은 온 마을에 퍼졌다.
양반 집 소녀는
질투에 몸을 부르르 떨 정도였다.

 

 

그 해 가을에 마을에서는
원님을 초대한 커다란 잔치가 있었다.
꽈리는 양반 집 모녀의 심술이 두려워
참석하지 못했다.
원님이 물었다.
「 지난 봄에 이 고을을 지나다가
노래를 아주 잘 하는 소녀를 보았지요.
그런데 그 소녀는 참석하지 않은 것 같군요.
그 노래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은데 」
주인은 꽈리를 데려오도록 하였다.



원님 앞에 당도한 꽈리는
역시 부끄러워 목까지 빨개졌다.
그러나 원님이 기다리고
동네 사람들도 조르는 바람에
노래를 하려고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데,
양반집 모녀에게 돈을 받은 불량배들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 저 애가 노래를 부른다고? 」
「 저 꼬락서니 좀 보라 」
「 누더기 차림으로 어떻게 원님 앞에 나올 수 있어 」
수줍음 많은 꽈리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끝내 노래를 못 부르고 집으로 돌아온 꽈리는
그대로 자리에 눕고 말았으며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듬해 봄에 꽈리의 무덤에서
처음 보는 풀 한 포기가 돋아났다.
그 풀은 꽃을 피우고
새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았다.
열매는 마치 생전에 수줍어 하던
꽈리의 모습처럼 붉었다.
그래서 이 꽃을 꽈리라고 불렀다.
붉게 여문 둥근 열매 속의 씨를
빼 버리고 입에 넣어 소리를 내면서
꽈리를 사랑했다 한다.

꽈리의 꽃말은
수줍음, 약함, 조용한 아름다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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