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소문은 연기처럼 솟아오릅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9. 25. 17:16


소문은 연기처럼 솟아오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서울에서 뱀과 같이 생긴 이상한 동물을 보았다."고 하면, 이 말이 골목을 나서자 그 동물에 발이 있다고 덧붙여지고, 성곽을 나서면 길이가 길어집니다.

서울을 나서면 날개가 덧붙여지고, 백 리를 나서면 바람과 구름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둔갑하며, 천 리를 가면 우레와 번개를 만드는 것으로 변하며, 수천 리에 퍼지게 되면 신령한 동물로 만들어집니다.

또한 "서해 바다에 뱁새와 같은 기이한 새가 있다."고 하면, 그 말이 한 입을 거치면 뱁새가 참새가 되고, 두 입을 거치면 다시 메추리가 되며, 세 입에 전해지면 꿩이 됩니다.

백 사람을 거치면 고니새로 변하였다가, 천 사람의 입을 거치면 다시 곤새와 붕새로 변하였다가, 천만 사람의 입을 거치면 천지간의 기묘한 새로 둔갑합니다.

알지 못하겠구나! 뱀이 신령한 동물이 되고 뱁새가 신령한 새로 되는 것이 이와 같이 쉽게 되는 것인가! 지금 어떤 사람이 신령한 동물과 신령한 새의 이야기를 듣고서, 처음에 이야기한 그 사람에게 가서 그 신령한 동물과 신령한 새를 찾아보려 한다면, 다만 뱀과 뱁새의 형상을 보는 데 그치게 될 것이니, 사람이 어찌 자신이 들은바 소문을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이광정(李光庭 1674 - 1756)의 시문집인 눌은집(訥隱集)에 실린 글입니다. 불이 일어날 때를 보세요. 연기가 위로 솟아올라 서로 뭉쳐서 머물다가 공중에 떠서 이리저리 떠돌고는 길게 솟아오릅니다. 그러다가 불이 꺼지면 연기는 더욱 높이까지 솟아오르고 멀리까지 갑니다. 말이 소음과 다름없이 다루어지고 있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입은 재앙의 문이라고 합니다. 뱀이 신령한 동물이 되고 뱁새가 신령한 새가 되는 것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집니다.

"모든 화(禍)는 입(口)에서 나온다. 일체 중생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口)에서 생기고 있다. 입(口)은 몸을 치는 도끼이며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

석가모니의 말씀입니다. 말은 때와 장소에 따라 검은빛이 흰빛으로 될 수도 있고 흰빛이 검은빛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입조심을 경계하여 이렇게 가르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태 15,11)
우둔한 자의 입술은 싸움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주먹질을 부른다." (잠언 15,6)
"우둔한 자의 입은 그를 파멸시키고 입술은 그를 옭아맨다." (잠언 15,7)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혀로는 사람을 속이고 입술 밑에는 살무사의 독을 품는다.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다." (로마 3,13-14) <꽃사진: 카랑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