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백성에게 나아갈 때는 밤이라도 개가 짖지 않을 정도여야 합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9. 20. 14:28


백성에게 나아갈 때는 밤이라도 개가 짖지 않을 정도여야 합니다



한 관리가 고을을 행차하다가 길가의 움막 집에서 꼽추병을 앓고 있는 노파를 보았습니다. 관리가 "이런 데 살면서도 인생의 즐거움이 있느냐?"며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노파가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든지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왜 없겠습니까."하고 대답을 하니 관리는 다소 뜻밖이라는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살면서도 정말 즐거움이 있단 말이오?" 노파는 다시 대답하였습니다.

"하늘이 나에게 다섯 가지 즐거움을 내려주었습니다. 첫째는 여자로 태어나게 하여 나를 복되게 하였고, 둘째는 미천하게 하여 나를 기쁘게 하였고, 셋째는 일하게 하여 나를 편안하게 하였고, 넷째는 질병이 들게 하여 나를 다행스럽게 하였으며, 다섯째로는 배고프고 춥게 하여 나를 영화롭게 해주었습니다."

관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되물었습니다.
"사람이란 모두 남자로 태어나서 존귀하고 편안하고 배부르고 건강하기를 바라거늘 도대체 여자로 태어난 것을 어떻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소?" 노파가 다시 대답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여자를 천시하고 남자를 중히 여긴 것은 남자는 태어나면 제각기 자기의 신분과 능력에 따라 일을 하고 여자는 오로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새 남자들은 온갖 힘을 기울여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려고 발버둥치지만, 나라에 세금 내기도 오히려 부족하고 농사일이 끝나기도 전에 부역 나오라 야단이며 홍수와 가뭄이 들어도 세금 독촉이 성화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남자들은 살아갈 의욕마저 잃고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걸식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도 서리배들은 고기와 술로 배를 채우고 그것도 부족하여 백성들을 협박해 뇌물을 먹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백성들은 관리를 이리떼처럼 보며 관가에 들어가는 것을 바다에 빠지는 것처럼 여기고 수령 보기를 검은 용 보듯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인징(隣徵 이웃에게서 억지로 추징하는 일)이나 족징(族徵 친척으로 하여금 군포를 대신 징수하는 일) 같은 제도 때문에 도망도 못 가고 빨리 죽기만을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늙은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복이 아닙니까?"

그러자 관리는 얼굴빛을 바꾸며 "노파의 말은 참으로 심각하구려. 그 렇다면 신분이 미천한 것은 어째서 기쁜 일이오?'하고 물었습니다. 노파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서울의 모대감께서 벼슬이 제일 높고 녹봉이 가장 많으며 권리 또한 막중하여서 그 집의 대문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 이런 즐거움을 누릴 사람이 어디에 또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소문을 듣자니 그 대감께서 법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을 수백 번이나 보았습니다.

천지간에 영원히 극성(極盛)하는 것은 없는 법이어서 물(物)은 극성하면 쇠퇴하게 되고 만복을 누리면 그 다음에는 잃게 되며 물이 차면 넘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몸은 미천하게 태어나고 자라 그런 큰 복이 내게 오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하지도 않고 넘치거나 쇠퇴할 염려도 없습니다.

그래서 미천한 생활이지만 하루하루를 마음 편하고 즐겁게 보냅니다. 하늘이 내게 준 쌀겨와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고량진미(膏梁珍味)를 찾지 아니하고 남루한 옷을 즐겨 입으면서 비단옷을 찾지 아니하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뜻을 어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관리는 얼굴에 두려운 빛을 띠면서 "노파는 과연 현명하오. 그렇다면 세 번째 즐거움인 '일하는 것이 편안하다는 것은 왜 그렇소?' 하고 물었습니다. 노파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팔, 다리, 눈, 귀를 내려준 것은 그것을 안일하게 내 버려두라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직분에 따라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는 일 없이 사는 자는 앙화(殃禍)가 있고 공을 들이지 않고 먹는 자는 재앙(災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에 맞게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어찌 마음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까닭에 거만하게 살고 나태하게 노는 자는 하늘이 버린 자식이며 인간 중의 병신인 것입니다.

속담에서 말하기를 '매미는 여름에 놀다가 겨울에 얼어 죽고 사마귀는 여름에 수고롭다가 겨울에 편안하다.'고 하였으며, '봄까지 간장 된장을 먹는 자는 늦잠 자는 사내가 아니고, 겨울에 솜옷 입는 자는 여름에 낮잠 자던 아낙이 아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관리는 이번에는 병에 걸린 것이 왜 다행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노파는 다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꼽추병을 앓아 좌우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앞으로만 기어다녀야 했는데, 그 덕분에 관리들이 이리떼처럼 몰려와 닥달을 해도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고 감옥에 가는 것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다른 부녀자들은 탐학(貪虐)한 관리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고 심지어는 음형(淫刑)까지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이 늙은이처럼 차라리 병에나 걸렸으면 하고 바라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자 관리는 탄식하며 마지막으로 춥고 배고픈 것이 즐거운 까닭을 물었습니다. 노파는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늘이 나에게 비천하고 굶주리는 운명을 내려주셨으면 그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춥고 배고프면 한 말의 양식을 생각하고, 양식을 얻으면 고기를 생각하고, 고기를 얻으면 입을 옷을 생각하고, 따뜻한 옷을 얻으면 재물을 얻기를 바라고, 재물을 얻으면 현달(顯達)하기를 바라고. 현달(顯達)하고 나서는 더욱 존귀해지기를 바라는 등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 욕망을 억지로 채우려고 하다가는 커다란 화란(禍亂)에 빠지게 됩니다. 추위를 참다보면 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배고픔을 견디다보면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뜻을 알고 산다면 어찌 마음이 즐겁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노파가 다섯 가지 즐거움을 다 말하자 관리는 놀라는 얼굴로 노파는 참으로 군자 같다면서 "그렇다면 노파는 이곳에 살면서 근심거리가 하나도 없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에게 비록 이런 즐거움들이 있지만 어찌 근심거리가 없겠습니까? 지아비와 자식이 있는 것이 바로 제 근심입니다."

관리가 돌이켜 물었습니다.
"여자가 성장하면 시집 가서 지아비를 얻고 아기 낳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대륜(人之大倫)인데 지아비와 자식이 있는 것을 어찌 근심이라 할 수 있겠소?"

노파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지아비와 자식이 있으니 군역(軍役)이 번다(煩多)하고 세금을 불시에 내야 되며, 세금 내지 않고 도망간 자의 책임까지 지게 되어 탐관오리들이 수시로 내왕하니 숨돌릴 사이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지아비와 자식이 생긴 이래 제 몸에서는 티끌이 떠나지 않고 거울 보고 빗질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관리는 노파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노파는 참으로 현명하오. 노파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해서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오."

관리는 일어나 인사를 하고 떠나는 말 위에서 세 번 탄식하며 망연자실한 빛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말몰이꾼이 궁금해 하며 물었습니다.

"나으리께서는 노파와 오랫동안 말씀을 나누셨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관리는 말몰이꾼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네가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 무릇 훌륭한 임금의 천하 다시리는 방법은 백성 스스로 깨닫게 해서 간섭하지 않는 것이고, 관리가 백성에게 나아갈 때는 밤이라도 개가 짖지 않을 정도로 친근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은 이처럼 곤궁하게 되고 말았구나!"

이광정(李光庭 1674 - 1756)의 시문집인 눌은집(訥隱集)의 망양록(亡羊錄)에 실린 글로 백미(白眉)의 글로 꼽힙니다. 노파의 말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며 그 현실 속에서 신음하던 백성들의 모습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원목(原牧)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초에 백성뿐이었으니 어찌 통치자가 있었겠는가? 백성은 자유스럽게 무리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과 다투게 되었는데 피차 결말을 짖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 중에 한 노인이 공정한 말을 잘 하므로 그 노인에게 가서 바른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복종하고 노인을 추대하여 마을의 어른인 이정(里正)이라 불렀습니다.

또 몇 마을의 백성이 마을과 마을끼리 서로 다투어 해결을 짓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한 노인이 있었는데 준수하고 지식이 많으므로 그에게 가서 바른 판결을 받았습니다. 몇 마을이 모두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추대하여 한 구역의 어른인 당정(黨正)이라 물렀습니다.

또 몇 구역의 노인이 현명하고 덕이 있으므로 그에게 가서 바른 판결을 받고 몇 구역이 그에게 복종하여 그를 한 고을의 어른인 주장(州長)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몇 고을의 장이 한 사람의 장을 추천하여 우두머리로 삼고 그를 방백(方伯)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몇 방백(方伯)들이 한 사람을 추천하여 우두머리로 삼고 황제(皇帝)라고 불렀습니다. 황제의 근원은 마을의 우두머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통치자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태양 아래에서 내가 악을 하나 보았는데 통치자 자신에게서 나오는 실책과 같은 것이다." (코헬 10,5)
<꽃사진: 
토레니아,포우르니에리토레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