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의 도덕심이 높음을 형용하는 고사성어 도불습유(道不拾遺)
진(秦) 나라는 일찍부터 법가(法家)를 등용해 부국강병을 이룬 나라이다.
중국 전국 시대 진나라의 제25대 군주인 진 효공(秦 孝公 BC 381-BC 338)이 공손앙(公孫鞅 BC 395-BC 338)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공손앙(公孫鞅)은 유학자이자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정치가였다. 상(商)나라를 분봉받아 후작이 되어 상앙(商鞅)으로 부르게 되었다.
진 효공(秦 孝公)이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두 번에 걸쳐 변법을 실시하자 진(秦) 나라는 반석위에 서게 되었다. 상앙(商鞅)이 사용했던 방법은 간단했다. 가혹하리만큼 엄한 벌을 세워 백성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왕족도 예외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법의 초안을 올리자 효공(孝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대로 했다가는 한 사람도 남아나지 못할 것 같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법이 공포되자 아우성이었다. 혹자는 칭찬하고 혹자는 비난했다.
상앙(商鞅)은 집권하자 연좌제와 신상필벌을 실시하고 법의 위험을 세우기 위해 법이 좋다고 와서 말하는 자도, 나쁘다고 말하는 자도 변방으로 쫓아 버리는 엄벌에 처했다. 태자가 법을 범하자 태자 대신 보육관인 공가건을 벌하고 사부 공손가를 자자형에 처했다.
이때부터 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렇게 해 놓고 법(法)을 시행하자 백성들은 감히 법(法)을 어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법(法)을 시행한지 10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였으며 백성들의 생활이 넉넉해졌으며 전쟁에도 연전연승할 만큼 용감했으며 나라는 크게 흥성(興盛)했다.
당시의 사회상을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이 사기(史記)에서 이렇게 말했다.
道不拾遺
山無盜賊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는 사람이 없었으며
산에는 도적이 사라졌다.
후에 진시황(秦始皇 BC 259-BC 210)은 이를 바탕으로 중국 땅을 통일하게 된다.
중국 사기(史記)의 상군전(商君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도불습유(道不拾遺)이다.
도불습유(道不拾遺)는 길에 남겨져 있는 물건을 줍지 않는다는 의미로 나라가 태평하고 인심이 순박해서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선정(善政)이 베풀어져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의 도덕심이 높음을 이야기 할 때 도불습유(道不拾遺)라는 말을 사용하며 철저한 준법정신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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