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목숨까지도 희생한다는 고사성어 위법망구(爲法忘軀)

박남량 narciso 2017. 9. 1. 07:54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목숨까지도 희생한다는 고사성어 위법망구(爲法忘軀)



법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리는 지극한 구도정신이 마침내 불도를 이룬다는 구도설화이다. 북위(北魏) 효명제(孝明帝) 때 낙양(洛陽) 땅에 신광(神光)이라는 박식한 스님이 있었다. 주위에서 다들 그 명민함을 부러워하고 경외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늘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예절[禮]과 술수[術]와 풍류[風]와 법규[規]뿐이요, 장자와 주역도 오묘한 이치를 완전히 밝히진 못했구나.”

어느날 신광(神光)은 곧장 ‘壁觀婆羅門 벽만 바라보고 앉은 바라문’이 머문다는 굴로 찾아갔다. 과연 소문대로 달마(達摩)라는 스님이 계셨다. 달마대사는 기침으로 기척을 알려도 꿈쩍도 않고 큰 소리로 이름을 밝히고 공손히 예를 올려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자신도 벽을 마주한 듯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신광(神光)은 물러서지 않았다. 굴 앞에 무릎을 꿇고 얼마를 기다렸을까? 소림사에서 점심공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러자 돌덩이처럼 꿈쩍도 않던 그가 커다란 가사에 발우를 들고 굴을 나서 신광(神光)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건네고 곁을 스쳐지나갔다.

신광(神光)은 온몸에 흐르는 전율에 소스라쳤다. 소림사에 여장을 푼 신광(神光)은 그날부터 제자의 예로 달마(達摩)를 모셨다. 열흘이 지나도록 달마대사는 벽만 바라볼 뿐 한마디 가르침이 없었다.

“옛사람들은 도를 구하려고 뼈를 부숴 골수를 뽑고, 피를 뽑아 굶주린 자들을 구제하고, 성인이 지나는 길에 머리카락을 펼쳐 진흙땅을 덮고, 벼랑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밥으로 줬다는데,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그해 12월 9일,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음을 탓한 신광(神光)은 해가 지고도 소림사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 밤에 큰 눈이 내렸다. 하지만 신광(神光)은 굴 앞에 서서 꿈쩍도 않았다. 여명이 밝아오자 쌓인 눈이 무릎을 덮었다.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드디어 돌아앉았다. 그리고 연민의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오래 눈밭에 서있는 것입니까?”

신광(神光)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화상이시여, 부디 자비로 감로(甘露)의 문을 열어 만 중생을 제도해 주소서.”

그러자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말했다.

“부처님들의 오묘한 도(道)는 오랜 세월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실천하기 힘든 일을 능히 실천하고 참기 힘든 일을 능히 참아내야만 합니다. 어찌 공덕도 쌓지 않고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된 가르침을 바라십니까? 괜한 헛수고일 뿐입니다.”

달마대사(達摩大師)의 훈계를 들은 신광(神光)은 몰래 가져왔던 칼을 꺼내 자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리고 그 팔을 달마대사(達摩大師) 앞에 놓았다.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놀란 눈빛으로 신광(神光)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모든 부처님도 처음에 도를 구할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답니다. 그대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자르는 걸 보니 법을 구할 만하군요.”

달마대사(達摩大師)는 마침내 신광(神光)을 허락하고,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로 바꿔주었다. 그렇게 제자가 되어 밤낮없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달마대사(達摩大師)는 여전히 벽만 바라볼 뿐 도무지 말씀이 없었다. 그 그림자를 따라 앉고 걸으며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혜가가 합장하고 정중히 여쭈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제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미소로 대답했다.
“모든 부처님의 법인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란다.”

고개를 숙인 채 망설이다 혜가(慧可)가 속내를 꺼냈다.
“제 마음이 아직 편안하질 못합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달마대사(達摩大師)가 가만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럼 편안하게 해주리라.”

한참을 침묵하다가 혜가(慧可)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무리 마음을 찾아보아도 끝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손을 거둔 달마대사(達摩大師)역 시 깊은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다시 9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천축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문인(門人)들을 모으고 말씀하셨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은 각자 터득한 바를 말해 보거라?”

그러자 제자인 도부(道副), 총지(總持)비구니, 도육(道育)이 차례로 깨달은 바를 말씀드렸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만 말이 없자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얻었는가?”

혜가(慧可)는 조용히 앞으로 나와 달마대사(達摩大師)에게 절을 올린 뒤 제자리로 돌아가 가만히 서있기만 하였다. 그러자 달마대사(達摩大師)가 흐뭇한 웃음을 보이며 말씀하셨다.
“그대가 나의 골수를 얻었구나.”


달마대사(達摩大師)와 혜가(慧可)스님 이야기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위법망구(爲法忘軀)이다.

위법망구(爲法忘軀)란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말한다. 즉 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진리)을 구하거나 얻기 위해 몸이 망가지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것까지 피하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 <꽃사진: 크리산세멈(Chrysanthem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