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사랑의 맹세는 아내를 저승길 길동무로 하는 것입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3. 3. 13:59


사랑의 맹세는 아내를 저승길 길동무로 하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병으로 죽어 가족들이 방에 들어가 상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노인의 요란스런 외침소리가 들려와서 가족들이 놀라 시체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 보니 노인은 이미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한편 놀라고 한편 기뻐하는 가운데 노인이 아내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결심이었소. 그런데 5-60리를 가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당신과 같은 늙은이를 아이들 손에 맡겨 두어서는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남의 폐만 끼치고 아무런 사는 보람도 없을 터이기에 차라리 같이 데리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되돌아와 당신과 함께 가려는 것이오."

가족들은 그 말을 장난이라고 생각하여 별로 깊이 믿지도 않았으나 노인은 거듭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그의 늙은 아내가 농담삼아 말했습니다.

"그것도 좋겠죠. 하지만 방금 되살아났는데 어떻게 다시 죽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노인은 장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문제없소. 집안일이나 빨리 끝내구려."

아내가 웃으면서 그냥 있자 노인이 거듭 재촉하여 아내는밖에 한번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다 치웠소." 하고 노인을 속였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빨리 옷 준비를 하도록 일렀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말을 듣지 않고 있자 노인은 더욱 재촉했고 아내는 영감의 말을 마냥 거역하는 것도 안 되었다 싶어서 드디어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며느리와 딸들은 모두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머리를 베개에 대고 손으로 두드리면서 아내를 서둘러 재우려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보는데 같이 눕다니 쑥스러워요."

아내가 이렇게 말하자 노인은 침대를 두드리면서 말했습니다

"같이 나란히 죽는 것이 어째서 쑥스러운가?"

자식들은 노인이 재촉하는 것을 보고 하여튼 시키는 대로 하라고 어머니에게 권했습니다. 그제야 늙은 아내도 남편 말을 따라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웠고 가족은 또 그것을 보고 모두 웃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노파의 웃는 얼굴이 일순 멈추고 점점 양쪽 눈꺼풀이 덮이더니 잠시 후에는 목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잠들어 버린 듯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놀라 가까이 가보니 피부는 벌써 차게 식었으며 숨을 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을 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들은 비로소 크게 놀랐으나 이미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살던 문인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나 자신의 경험담까지 합쳐서 지은 기담 모음집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의 작가인 포송령(蒲松齡)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제일 이별하기 어려운 것은 이부자리를 같이한 사랑스런 아내이다. 만약에 우리들이 이 노인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조조(曹操)와 같이 신발을 팔든지 향을 나누든지 하는 일을 아니 해도 좋았을 것이다."

조조(曹操)는 임종 때 잔향(殘香)을 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 할 일이 없으면 버선을 만드는 것을 배워 두었다가 그것을 팔아 돈으로 바꾸도록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인용한 말입니다.

偕老同穴(해로동혈)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부부가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한다는 부부간의 사랑의 맹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唐)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도 증내(增內)라는 제목의 아내에게 바치는 시(詩)에서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生爲同室親(생위동실친)  死爲同穴塵(사위동혈진)
살아서는 한 방에서 사랑하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흙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