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사랑과 나눔이 행복의 꽃씨가 되어 자라고 있음을 아세요

박남량 narciso 2017. 2. 27. 16:27


사랑과 나눔이 행복의 꽃씨가 되어 자라고 있음을 아세요



옛날에 염씨라는 가난한 사람이 한길 가에 움막을 짓고 신을 삼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 한 스님이 비에 젖은 채 신발도 없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염씨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스님께 집안에 들어오라고 해서 찬 밥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가시게 한 다음 신발 한 컬레를 내주면서 신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승이 따로 보답할 것은 없고 시주님께 집 터 하나 정해 드릴 것이니 그곳에 움막이라도 짓고 살아보십시오."

염씨는 스님이 터를 잡아 준 곳에 움막을 짓고 여전히 신을 삼아서 팔며 사는데, 어인 영문인지 신이 전보다 몇 배는 더 잘 팔리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염씨는 움막을 헐고 아담한 집을 지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수입은 더욱 늘어 색씨를 얻어 아들을 일곱 명이나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큰아들이 일곱 살이 되자 온다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버린 것입니다. 집을 나가자 돌아올 줄을 몰랐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둘째아들도 나이 일곱 살이 되자 집을 나가더니 소식이 없었고 이윽고 연달아 일곱 형제가 모두 일곱 살만 되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들을 다 잃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 염씨는 늙은 아내와 쓸쓸히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입니다. 두 늙은이가 바깥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웬 벼슬아치 일곱 사람이 의젓하게 차려입고 마을로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두 내외는 그 모습이 부러워서 탄식을 했습니다.

"뉘 집 자손이기에 벼슬을 해서 저렇게 훌륭하게 꾸미고 오는 것일까? 우리는 아들을 일곱씩이나 두었는데도 무슨 놈의 팔자로 자식들의 소식도 모르고 이렇게 쓸쓸히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때였습니다. 바로 그 벼슬아치들의 행차가 염씨 집 문 앞에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집안에 들어서더니 두 내외에게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두 노인이 어리둥절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뉘시기에 난데없이 우리한테 큰 절을 올린단 말이오?"

벼슬아치들의 맏이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저희는 모두 일곱 살 때 집을 나갔던 아들들입니다. 저희가 집을 나간 것은 일념으로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라서 이렇게 돌아온 것입니다."

두 늙은이가 그 후 복되게 살았음은 물론이요, 이 사실이 나라에 알려지자 자식을 일곱씩이나 벼슬길에 올린 부모라 해서 크게 상을 내렸습니다.

한여름밤의 고전산책(박서림/샘터)에서 나누는 '스님의 보은'이라는 한국구전설화(韓國口傳說話)의 보은설화(報恩說話)입니다. 밥 한 끼, 신 한 컬레를 베푼 보답 치고는 참으로 큰 보은(報恩)입니다. 그 옛날의 스님은 작은 은혜를 이렇듯 크게 갚고 있는데 오늘의 우리는 혹시 크나큰 은혜를 입고도 원수로 갚고 있지나 않는지요.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하늘이 한 번 봐 주는 것에 못 미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人之千算 不如 天之一算(인지천산 불여 천지일산) 사람이 천 번 계산해도 하늘이 한 번 계산함만 못하다."
<꽃사진: 제라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