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두렵다는 고사성어 풍성학려(風聲鶴唳)

박남량 narciso 2018. 3. 12. 14:07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두렵다는 고사성어 풍성학려(風聲鶴唳)




동진(東晉)의 9대 효무제(孝武帝) 때인 태원(太元) 8년의 일이다. 동진(東晉)의 명장 사현(謝玄)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전진(前秦)의 진왕(秦王) 부견(符堅 338∼385)이 직접 이끌고 내려온 백만에 가까운 군사를 맞아 겨우 10분의 1밖에 안되는 적은 군사로써 이를 회하(淮河) 상류인 비수에서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대승리를 거두었다.

사현(謝玄)이 대승을 하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진(晉)의 재상 사안(謝安)은 동생 사석(謝石)과 조카인 사현(謝玄)을 선봉으로 삼아 8만의 군사로 서진(西秦)의 백만 대군을 맞이했다. 그리고 사현(謝玄)은 적의 총지휘관인 부융(符融)에게 사자를 보내 이렇게 청했다.
"귀하의 군대를 조금만 뒤로 후퇴시켜 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물을 건너가 한 번 싸움으로 승부를 하겠습니다."

군사의 수(數)를 믿고 상대를 깔보고 있던 부견(符堅)과 부융(符融)은 얼마 안되는 적이 물을 반쯤 건너왔을 때 기습작전으로 간단히 이를 해치울 생각으로 사현(謝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융符融)의 북군이 후퇴를 개시하고 남군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을 때 북군 내에서 뜻하지 않은 혼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물러나라는 명령을 받은 북군은 남군이 강을 건너오는 것을 보자 싸움에 패(敗)해서 물러나는 것으로 오인하고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뒤쪽에 있던 군사들은 앞의 군사가 허둥지둥 도망쳐 오는 것을 보자 덩달아 겁을 먹고 정신없이 달아났다. 이리하여 북군은 자기 군사가 모두 적군으로 보이는 혼란 속에서 서로 짓밟으며 달아나다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대혼란에 빠진 남은 군사들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밤을 새워 달아나며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진(晉)나라 군사가 뒤쫓아 온 걸로 알고 길도 없는 가시밭 속을 헤매며 한데서 밤을 보냈다. 거기에다 굶주림과 추위까지 겹쳐 죽은 사람이 열에 일곱 여덟은 되었다.

堅衆奔潰 自相答藉 投水死者 不可勝計 搳水爲之不流 餘衆棄甲宵遁 聞風聲鶴崳 皆以爲王師已至 草行露宿 重以飢凍 死者十七八


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풍성학려(風聲鶴唳)이다.

풍성학려(風聲鶴唳)란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겁을 집어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란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