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迷惑)은 깨달음으로 건지고 어리석음은 지혜로 건져야 합니다
520년 경에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왔습니다. 달마대사(達摩大師)는 남인도 천축국(天竺國)의 왕자입니다. 달마대사(達摩大師)는 입적할 때 불법(佛法)을 혜가대사(彗可大師)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혜가대사(彗可大師)는 승찬대사(僧璨大師)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여섯 번째 법맥을 이은 분이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 638-713)입니다.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의 설법을 제자인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가 책으로 편찬한 육조단경(六祖壇經)의 이야기입니다.
혜능(慧能)은 세 살 때 부친을 여의고 나무 장사를 하며 자란 깜깜무식쟁이었습니다. 하루는 주막에서 나무를 팔고 나오다가 어떤 길손이 읽고 있던 금강경 내용을 듣고는 마음이 후련히 열림을 깨닫고 길손에게 그 경(經)을 어디서 구하였느냐고 물어 보니 황매현(黃梅縣)의 동선사(東禪寺)에서 얻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들은 혜능(慧能)은 달마대사(達摩大師)의 법(法)을 다섯 번째로 이은 홍인대사(弘忍大師)가 주석(駐錫)하고 있는 동선사(東禪寺)로 찾아가서 장작을 쪼개고 방아 찧는 막일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혜능(慧能)이 동선사(東禪寺)에 온 지 8개월 되던 어느 날 홍인대사(弘忍大師)가 문인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각기 돌아가서 제 성품을 살펴보고 하나씩 게송(偈頌)을 지어 오너라. 그것을 보고 큰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법을 전하여 제6대조로 삼으리라."
여러 스님이 이 분부를 듣고 물러나와서 공론을 벌인 결과, 어차피 자신들은 공부가 시원찮으니 자기들 중에 제일 재주 있는 신수(神秀)라는 상좌 한 사람만 게송(偈頌)을 짓기로 했습니다. 신수(神秀)는 야반 삼경에 복도에다 가만히 게송(偈頌)을 써 놓았습니다.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勿使惹塵埃(물사유진애)
몸이 보리수 나무라면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구나.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앉고 때 끼지 않도록 하세."
홍인대사(弘忍大師)는 이를 보고 겨우 문밖에 이르고 문 안에는 못 들어온 경계(境界)라고 평하였습니다. 혜능(慧能)이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은 글자를 모르는지라 '나도 게송(偈頌)을 하나 지어 볼 터이니, 누가 좀 써 주기 바라오." 하면서 게송(偈頌)을 읊었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보리에 본디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인데 어디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 것인가?"
홍인대사(弘忍大師)가 이를 보고 혜능(慧能)이 큰 그릇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인정하면 주변 사람들이 혜능(慧能)을 해칠까 염려하여 그날 밤 삼경에 아무도 없을 때 불러 법(法)을 전한다는 표시로 가사와 바리때 즉 의발(衣鉢)을 건네 주었습니다. 혜능(慧能)은 의발(衣鉢)을 가지고 멀리 남쪽 지방으로 가서 15년을 숨어 지냈습니다.
하루는 이젠 불법(佛法)을 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광주 법성사에 칮아갔습니다. 마침 바람이 불어 와 깃폭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우기고, 한 스님은 '깃폭이 움직인다.'고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혜능(慧能)이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움직임도 아니고 깃폭의 움직임도 아니며 당신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세."
스님들은 깜짝 놀라 혜능(慧能)이 범상한 분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혜능(慧能)은 여기에서 비로소 머리를 깎고 자신이 육조대사(六祖大師)임을 밝히고 법문(法門)을 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종일 입으로는 반야(盤若) 곧 진리를 염하되, 자신의 성품이 반야(盤若)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먹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 봐도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사람이 본성품이 곧 부처라, 성품을 떠나서는 부처가 없느니라.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한 생각 깨달으면 중생도 부처니라. 스스로 마음을 관(觀)하여 본성을 보도록 하라."
"사람들은 아미타불을 외워 서방 극락정토에 태어나서 살고자 한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자성(自性)을 모르므로 제 몸 속의 정토를 알지 못하고 동방이니 서방이니 찾고 있지만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있어서나 한가지임을 아느니라."
어떠한 것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냐? 법문 중에 걸리고 막힘이 없어서 밖으로는 일절 선악 경계에 마음과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이 좌(坐)이며, 안으로는 자성(自性)을 보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선(禪)이니라."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남아 있습니다. 육조대사(六祖大師)가 보림사에 있을 때 절 앞에 못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용이 늘 출몰하면서 안개를 피우고 바람을 일으키고 수림을 흔드는 등 장난이 심했습니다. 하루는 또 용이 장난하는 것을 보고 대사께서 말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신통이 장하다면 몸집을 작게도 하고 크게도 하여 자유자재할 것이다. 어디 작은 몸은 나타내어 보아라."
용이 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곧 아주 작은 몸으로 솟아올랐습니다. 대사가 발우(鉢盂)를 대면서 "네가 이 발우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하니 용이 발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사가 이를 거두어 당(堂)으로 올라와 앞에 놓고 법(法)을 설(說)하여 주니 용이 그 공덕으로 몸을 벗고 갔습니다. 그 뼈가 지금도 전해 오는데 길이가 칠촌 쯤 되고 두미(頭尾)와 각족(角足)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대사는 국은사(國恩寺)에서 재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내가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하고 계송을 설한 후 단정히 앉아서 삼경이 되자 "내 이제 가노라." 하고 천화(遷化)하셨습니다. 이때 향기가 집에 가득차고 흰 무지개가 땅에서 뻗쳤다고 합니다. 때는 713년이며 제자들이 재사의 진신(眞身)을 조계산(曹溪山)의 탑 속에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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