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만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고사성어 만사일생(萬死一生)

박남량 narciso 2016. 8. 17. 11:34


만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고사성어 만사일생(萬死一生)



수(隋)나라는 건국 초부터 대토목 공사를 일으켜 나라가 피폐했는데 양제(煬帝 569 - 618) 때에 이르러서는 도가 심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문제(文帝)의 먼 인척으로 총애를 받던 이연(李淵)은 관중의 치안을 맡고 있다가 내란 진압의 특명을 받고 이때 18세의 어린 나이었던 아들 이세민(李世民 598 - 649)과 함께 출정하였다.

이연(李淵)은 본래 호탕하여 천하의 호걸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는데 황제는 이연(李淵)이 출정한 뒤 사람을 시켜 그가 반란군에 동조하지 않는지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이세민(李世民)은 차제에 자립할 것을 아버지에게 권하였다.

"지금 반란군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전부 토벌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들을 토벌하지 못한다면 황제는 벌을 내릴 것입니다."

이연(李淵)은 태원을 거점으로 하여 병사를 일으키고 다른 곳에서 일어난 반란군들을 회유하여 하나하나 자신의 세력 밑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수양제(隋煬帝)는 우문화에게 시해되고 수(隋)나라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국 통일의 염원을 이세민(李世民)이 이룬 것이다.

이세민(李世民)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를 같이한 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장량(張亮)이나 이정(李靖), 이적(李勣)과 같은 명장, 왕규(王珪)·위징(魏徵)·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 같이 현명한 재상들이 이세민(李世民)을 도와 후일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일찍이 이연(李淵)이 병사를 일으키려고 했을 때 이 사실을 눈치 챈 관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정(李靖)이다. 이정(李靖)은 장안으로 가서 보고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이연(李淵)은 자신의 거사를 망치려고한 이정(李靖)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를  만류하고 훗날 재상으로 삼았다.

이정(李靖)은 평상시 자신보다 지혜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보면 자기 자기를 서슴없이 내놓는 그런 사람이다. 이세민(李世民)은 그의 이러한 면을 아꼈던 것이다. 이세민(李世民)은 현무문에서 황제 세력을 물리치고 태종으로 즉위하여 관료제로써 지방에 할거하던 군웅을 복속시키고 학문을 장려하여 민심을 가라앉혔으며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옛날에 방현령(房玄齡)은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느라 고생을 하고, 萬死一生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오기도 하였다.” 흔히 사용하는 구사일생(九死一生)과 같은 의미이다.


당 태종의 정치(貞觀之治)를 기록해 놓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만사일생(萬死一生)이다.

만사일생(萬死一生)이란 만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뜻으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요행이 살아나거나 겨우 죽음을 모면한다는 말이다. <꽃사진: 섬백리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