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달려들다라는 고사성어 장구직입(長驅直入)
적벽대전이 끝난후 유비(劉備 161 - 223)는 제갈량(諸葛亮 181 - 234)의 보필을 받아 익주와 한중을 점령했다.
이때 관우(關羽 160 -219)는 형주(荊州)에서 군사를 일으켜 중원에로 진격했다. 동오(東吳)의 대장인 여몽(呂蒙 178 - 219)은 관우(關羽)의 대군이 원정을 가고 형주(荊州)의 수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는 오(吳)나라
군사들을 상인으로 가장시켜 형주(荊州)에 들여보냈다.
이들이 기습작전을 펼치니 형주(荊州)의 수성장군인 미방(靡芳)이 싸움에 패하고 동오(東吳)에 투항하게 되고 형주(荊州)도 오(吳)나라에 점령되었다. 형주(荊州)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관우(關羽)는 크게 놀라 일부 병력을 갈라 형주(荊州)를 탈환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위(魏)나라의 서황(徐晃)과 교전하려 했다.
서황(徐晃 ? - 227))의 군사는 거의가 정규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고 전투경험도 없는 신병들이었다. 이런 오합지졸을 이끈
서황(徐晃)은 관우(關羽)와의 정면대결을 잠시 피하고 군사들은 양릉에 주둔시키고 성을 굳게 지키라고 명했다.
조조(曹操 155 - 220)는 이런 신병들로는 관우(關羽)의 대군과 필적할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군사들을 서황(徐晃)에게 보충해 주었다. 병력을 보충받은 서황(徐晃)은 이제는 관우(關羽)와 한판 대결을 할수 있다고 판단했다.
승승장구하던 관우(關羽)의 대군은 비록 형주(荊州) 수복을 위해 일부 군사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 병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관우(關羽)는 군사를 위두와 사가라는 두 곳에 나누어 주둔시켰다. 조조(曹操)군의 공격을 대비해 관우(關羽)는 군영 주위에 참호를 깊이 파고 거기에 녹채를 깔았다.
관우(關羽)의 군사가 두 곳에 나누어 주둔한 것을 본 서황(徐晃)은 위두를 공격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고 진짜
공격목표는 사가로 정했다. 공격이 시작된후 관우(關羽)는 사가쪽이 위험해 진것을 보고 군마 5천을 직접 이끌고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서황(徐晃)은 기실 전부의 병력을 모아 사가를 치고 있었던 지라 수적으로 열세에 처한 관우(關羽)의 군사는 대패하고 말았다. 서황(徐晃)은 여세를 몰아 관우의 군영까지 쳐들어갔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조(曹操)는 크게 기뻐하면서 서황(徐晃)을 격려하는 글을 썼다.
"吾用兵三十餘年 及所聞古之善用兵者 未有長驅直入敵圍者也(오용병삼십여년 급소문고지선용병자 미유장구직입적위자야)
내가 용병한지 30년이 되었고 또 옛날
군사를 잘 자휘하는 장군은 많았으나 서황처럼 포위된 와중에 적진에 들어가 승리를 거둔 사례는 없었으니 서황의 공로는 손무보다 더 크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서황전(徐晃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장구직입(長驅直入)이다.
장구직입(長驅直入)이란 거침없이 달려들다는 뜻으로 말을 제쳐 달리다. 승승장구로 전진하다.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게 전진하다는 말이다.<꽃사진: 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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