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 앞을 지나가며 입맛을 다신다는 고사성어 도문대작(屠門大嚼)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인 허균(許筠 1569-1618)은 어렸을 때에 집은 가난하였으나 사방에서 생산되는 별미를 선친에게 예물로 바치는 자가 많아 진귀한 음식을 고루 먹을 수가 있었다. 커서는 다행히 잘사는 집에 장가들어 산해진미를 모두 맛볼 수 있었다. 또 임진왜란 때는 난리를 피해 강릉에 있으면서 동해 바다에서 나는 기이한 해산물을 골고루 맛보았고, 벼슬길에 나선 뒤로는 남북으로 전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별미를 모두 먹어볼 수 있는 식복을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허균(許筠)이 죄를 짓고 바닷가에 유배되자 쌀겨마저도 보기 어려웠다.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 들미나리가 고작이었고 그것조차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것마저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면 산해진미도 물리도록 먹던 시절을 생각하며 침을 삼키곤 하였다.
그래서 그 동안 먹어 본 일이 있는 산해진미들을 노트에 적고 가끔 눈을 주기로 하였다. 허균(許筠)이 신해년(1611년 광해군 3년) 4월 21일 날짜까지 박아서 서문을 쓴 뒤 별미들의 리스트를 작성하였다. 유배지에서 주린 배를 쥐고 밤을 새다가 음식리스트를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고기 한 점을 물 듯 쾌감을 느껴보려 한 것이다. 그는 이것을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고 표현하였다.
우리나라는 바다로 둘러싸이고 산이 높아 물산이 풍부하다면서 떡, 수산물, 새와 고기, 채소 종류를 아주 상세하고 무척이나 수다스럽게 열거하였다. 새와 고기 종류로는 웅장, 표범의 태, 사슴의 혀(녹설), 사슴의 꼬리(녹미), 고치(꿩), 거위 등을 지방 특산물로 들었다. 돼지, 노루, 닭 등은 어디나 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허균(許筠)은 음식 타령만 한 것이 아니다. 사치에 빠져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의 현달한 자들에게 부유할 때와 가난할 때의 상황을 박진감 있게 제시하며 부귀영화가 무상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고 하였다.
허균(許筠)의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도문대작(屠門大嚼)이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허균(許筠)의 별미 노트를 일컫는 말이다. 푸줏간 앞을 지나가며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고기집 앞을 지나면서 입을 크게 벌려 고기 씹는 시늉을 하면서 잠시 마음을 유쾌하게 갖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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