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눈 앞의 쾌락에 젖어 자기 본분을 망각한다는 고사성어 낙불사촉(樂不思蜀)

박남량 narciso 2014. 11. 14. 11:05



눈 앞의 쾌락에 젖어 자기 본분을 망각한다는 고사성어 낙불사촉(樂不思蜀)







유선(劉禪)은 유비(劉備 161-223)의 장남으로 선제인 유비(劉備)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촉(蜀)의 2대 군주이자 마지막 황제이다. 그는 비범한 인물도 아니었으며 곁에 훌륭한 신하들도 없었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이 죽은 후 유선(劉禪)은 위(魏)나라 사마소(司馬昭 211-265)의 침략을 받자 제갈량(諸葛亮)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에게 조서를 내려 불러들였다. 유선(劉禪)은 제갈첨(諸葛瞻)에게 울면서 간청했다.
『선제를 보아서라도 짐을 구해 주시오.』

제갈첨(諸葛瞻)은 유선(劉禪)이 방탕한 생활을 하자 병을 핑계로 조정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촉(蜀)의 정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아들 제갈상(諸葛尙)을 선봉으로 하여 위(魏)나라 병사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유선(劉禪)은 스스로 몸을 결박 지은 다음 성문을 열어 북문 수십 리 밖으로 나가서 투항한다.

그의 아들 유감은 유선(劉禪)의 항복 결정에 머리를 조아리고 통곡하며 말했다.
『저승에 가서 무슨 낯으로 할아버지를 뵈오려 합니까? 죽을 때까지 싸워 선제의 혼령을 떳떳이 뵙는 것이 도리이지 어찌 욕되이 항복을 하자고 하십니까?』

유선(劉禪)은 아들 유감의 간언을 외면하였다. 결국 아들 유감은 부인에게 작별의 말을 했다.
『부황께서 항복을 결정하셨다 하오. 이제 사직은 망했소. 나는 무릎을 꿇어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죽어서 선제를 뵐 생각이오.』 
부인은 눈물로 그 뜻을 받들었다.
『소첩도 마마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유감의 부인은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했다.
유감은 통곡하며 아내의 시신을 거두고 어린 두 아들도 죽여 수급을 거두어 소열 황제 유비(劉備)의 묘를 찾아가 분향 사배하고 자결한다.

유선(劉禪)의 항복으로 촉(蜀)은 망한 것이다. 촉(蜀)나라를 세운 유비의 천하 통일의 꿈과 그동안에 흘린 피의 대가도 없이 황제 유선(劉禪)의 무능 때문에 송두리째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알아서 항복했다는 정상이 참작돼 비록 패장이지만 참형은 면한다.

사마소(司馬昭)는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어 유선(劉禪)을 대접했다. 위(魏)나라 음악을 연주하게 하여 무희들에게 춤을 추게 하니 위(魏)나라 음악을 듣는 촉(蜀)의 장수들은 서글픈 신세에 눈물을 흘리는데 그 속에서 유선(劉禪)만은 아무 감상이 없다는 듯 마냥 좋아하고 있었다. 

사마소(司馬昭)는 이번에는 촉(蜀)의 음악을 연주하고 무희들에게 춤을 추라고 명했다.  촉(蜀)의 음악이 나오자 촉의 장수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잃어 버린 나라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이때에도 유선(劉禪)은 희색이 만연하여 연회를 즐겼다.

뜻밖의 행동에 사마소(司馬昭)가 유선(劉禪)에게 물었다.
『촉(蜀)이 그립지 않소?』
유선(劉禪)은 헤벌쭉하니 웃었다.
樂不思蜀
이곳에 있으니 이처럼 즐거운데 어째서 촉(蜀) 생각이 나겠습니까?』
사마소(司馬昭)는 같잖은 마음에 실소를 터뜨렸다. 유선(劉禪)은 가히 경계할 인물이 아님을 알고는 마음을 놓았다.

중국 속담에 '세워도 자빠지는 아두'라는 말이 있다. 아두(阿斗)는 유선(劉禪)의 아명이다.
이 속담은 하나마나 하는 일을 해보아도 허사라는 것을 빗대는 말로 유선(劉禪)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평가가 잘 나타난 속담이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낙불사촉(樂不思蜀)이다.

낙불사촉(樂不思蜀)이란 즐기느라 촉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눈 앞의 쾌락에 젖어 자기 본분을 망각한다는 뜻이다.
<사진: 부산 다대포 다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