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꽃이 해를 보고 얼굴을 마주하듯 심장을 진리 쪽으로 고동치게 하세요

박남량 narciso 2016. 1. 22. 14:58


꽃이 해를 보고 얼굴을 마주하듯 심장을 진리 쪽으로 고동치게 하세요



한 마리의 지네가 백 개나 되는 다리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백 개나 되는 다리로 걸어가는 것은 하나의 기적입니다. 두 개의 다리를 조절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백 개나 되는 수많은 다리를 조절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지네는 언제 어디서나 잘 조절해 왔습니다.

이런 지네를 지켜보던 한 마리 여우가 의문에 사로잡힙니다. 여우라는 짐승은 항상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화 속에 등장하는 여우는 지식과 분석과 논리의 상징입니다. 여우는 보고 관찰하고 분석합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터득한 지식을 전파합니다. 여우는 지네가 백 개의 다리를 가지고도 아무 탈 없이 잘 걷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네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얘, 잠깐, 의문나는 점이 있다. 너는 어떻게 그 많은 발들을 조절하니? 한 발 다음에 어느 발이 뒤따라야 하는지를 어떻게 다 알고 있니? 백 개의 발이라니. 그 많은 발을 가지고도 너는 아주 유연하게 걷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과연 어떻게 이런 조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

지네가 대답합니다.
『나는 평생을 두고 이렇게 그저 걸어다닐 뿐이야. 그러나 한 번도 네가 묻는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 내게 시간을 주어. 한번 그 점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보겠다.』

지네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지네는 분리되었습니다. 관찰자로서의 마음과 관찰되는 자로서의 그 자신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네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지닌 능력에 따라 언제나 살고, 걷고, 또 그렇게 되풀이해왔습니다. 다리를 움직이는 자신과 다리가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은 전체로서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여우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자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네는 다시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여우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네가 걷는 것이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어. 나는 그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지네는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습니다.
『전에는 결코 어렵지 않았어. 그런데 여우 네가 문제를 일으킨거야. 이제 나는 다시 그전처럼 걸을 수가 없게 되었어.』

미국의 저술가이며 사상가로서 긍정적인 인생 성공철학의 대가인 랄프 W. 트라인(Ralph Waldo Trine)이 쓴 <나에게서 구하라. 내 안의 무한한 지혜와 생명을 찾아서>에 실린 지네와 여우에 대한 우화로 법정 스님의 숫타니파타(Suttanipata)강론집에서 옮겨 함께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우와 같이 의심이 많고 분별이 많으며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지식이란 이와같이 위험한 것이라고 넌지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배우는 것은 지식이나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영혼의 양식을 먹는 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지네처럼 백 개의 다리를 가지고도 즉, 이 풍진 세상의 온갖 일을 하면서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무심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