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꽃은 피우면서도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4. 4. 13:30


꽃은 피우면서도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노나라에 아들 셋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침착하나 다리를 절었고, 둘째아들은 괴벽한 것을 좋아하지만 온건하였으며, 막내아들은 경박하지만 민첩하고 용감하였습니다.

하루는 둘째가 막내에게 태산의 일란봉에 올라 힘을 겨루어보자며 나막신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자 큰형도 행장을 차리며 따라나설 준비를 하였습니다. 두 동생이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태산의 정상은 구름 위에 솟아 있는데, 어찌 절름발이 형이 따라올 수 있을까?"

태산의 어귀에 이르자 두 동생은 형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도 단숨에 오를 수 있으니 형님이 먼저 오르시오."

맏이는 쉬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곧 산의 정상에 이르렀고 밤에 관(館)에서 자고 새벽에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구경하였습니다. 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각자가 구경한 것에 대해 물었습니다.

막내가 먼저 대답하였습니다.

"산기슭에 이르러 시간이 남았기에 주변의 골짜기와 오솔길을 두루 구경하는데, 헤매는 것이 끝나기도 전에 땅거미가 지더군요. 바위 밑에서 자려고 누웠더니, 바람소리, 물소리와 온갖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무서워 힘을 발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습니다."

다음은 둘째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경치가 너무 좋아서 봉우리마다 다니며 구경하려 하였는데, 봉우리는 갈수록 험해져서 산허리에 이르기도 전에 해가 져 버렸습니다. 정상으로 올라가자니 갈 길이 너무 멀고 산 아래로 내려가자니 그도 또한 너무 멀어서 그냥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끝으로 맏이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절름거린다는 것을 생각하고 조금도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쉬지 않고 올라갔더니 옆 사람이 정상에 다 왔다고 말해주더군요.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닿을 것만 같았고 아래를 굽어보니 푸른 빛이 끝나는 곳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뭇 산은 조그만 흙무덤 같았고, 뭇 골짜기는 옷주름 같았습니다. 지는 해가 바다에 빠지자 하계(下界)는 검게 변하고, 주변을 살펴보자 별빛은 서로 빛나서 손금까지도 비추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누워서도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천계가 한 번 울자 동방이 밝아와서 은홍빛이 바다를 덮더니 금빛 파도가 하늘을 박차고, 붉은 봉황과 금빛 뱀이 그 사이에서 흔들흔들하며 갑자기 붉은 해바퀴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구르더니, 눈 한 번 깜짝하기도 전에 큰 빛이 하늘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절묘하고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세 아들의 말을 듣고 평했습니다.

"공자(孔子)에게 자로(子路)와 염구(苒求)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자로(子路)의 용감함과 염구(苒求)의 재주로도 공자(孔子)의 담장 안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증자(曾子)는 노둔함과 인내로써 마침내 공자(孔子)의 담장 안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너희들은 이를 반드시 기억해 두어라."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문집인 사숙재집(私淑齋集)에 실린 등산설(登山說)이라는 글입니다. 사숙재집(私淑齋集)은 시(詩), 사(辭), 부(賦), 잡저, 가사, 교서, 계문(契文), 행장, 전(傳), 설(說)과 함께 농사기술 등도 있으며 해학과 재치 있는 문장으로 표현한 우언(寓言)도 다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에는 둘째와 막내는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믿다가 태산의 머리에 올라서지도 못하였습니다. 마치 설익은 복숭아가 솜털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맏이는 스스로를 겸손히 내려다보며 결국에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습니다.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뜻으로 비록 천천히 하더라도 쉬지 않고 꾸준하게 일을 한다는 중용(中庸)에서 비롯된 불식지공(不息之功)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苗而不秀者 有矣夫(묘이불수자 유의부) 秀而不實者 有矣夫(수이불실자 유의부)

공자(孔子)의 말입니다.
"싹은 틔우면서도 꽃은 피우지 못하는 것이 있고 꽃은 피우면서도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것이 있다."

어찌 풀 한 포기만 그렇겠습니까?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자(曾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以能 問於不能(이능 문어불능)  以多 問於寡(이다 문어과)  有若無(유약무)  實若虛(실약허)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사람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묻고, 있으면서도 없는 듯하고, 가득 차 있으면서도 텅빈 듯 하라."

증자(曾子)는 이렇게 하여 공자(孔子)의 학통(學通)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었습니다. 영근 이삭은 제가 먼저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때로는 토끼가 거북을 이길 수 없고 아는 길도 물어가는 사람은 길을 잃고 허둥대지 않는 법입니다. 이렇듯 우직한 성실이야말로 교만한 재주보다 나은 것입니다.<꽃사진: 괭이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