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자식의 행복을 위한 선택은 부모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4. 24. 09:58


자식의 행복을 위한 선택은 부모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자식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알지만, 재물은 남의 것이 좋아 보이고 탐이 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식은 내 자식이 커 보이고 벼는 남의 논에 벼가 커 보인다"는 말입니다. 자식을 둔 부모들 마음은 자기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더 귀하게 자랐고 더 우수한 교육을 받았고 더 빼어난 인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착각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부모는 이러한 오해가 이미 인간의 헛된 욕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꽤 지체 높은 두더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인물이 아주 빼어났습니다. 두더지 부부는 아끼는 것 없이 딸에게 온갖 공부를 다 시켰습니다.

딸은 슬기롭게 자라나 땅도 잘 파고 다른 짐승의 발소리도 잘 들으며 사람이 달려들어 잡으려 해도 뒷걸음으로 쪼르르 달아나는 등 그 재주를 당할 두더지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여쁜 주둥이에 구슬을 꿴 듯한 이, 반드르르한 털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완고한 아비두더지는 지체가 높고 나룻이나 길고 등에 살이나 돋은 얌전한 두더지를 사위로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미두더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어찌 이 잘난 딸을 그까짓 두더지에게 시집 보내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내외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루 저녁에는 어미두더지가 다른 때보다 더 짜증을 내며 말하였습니다.

"우리 딸은 저 저녁 하늘에 총총한 별님에게도 시집을 보내야지. 이리 귀하고 잘난 딸을 두더지에게 시집 보내는 건 말도 안돼."

아비두더지도 이에 지지 않았습니다.

"흥, 그럼 내친 걸음에 하늘에게로 시집을 보내지. 이 세상에 하늘보다 높은 이는 없을 테니까."

그러자 어미두더지가 말했습니다.

"과연 그 말씀이 더 옳소. 내일 곧 통혼을 합시다."

의논이 정해지자 부부두더지는 하늘로 찾아가 하느님에게 자신들이 온 내력을 낱낱이 일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대답했습니다.

"고맙소마는 그대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소. 내가 능히 땅을 뒤덮고 온갖 것을 만들기는 하지만 저 구름이 오히려 나보다 낫소. 구름이 다가오면 내 얼굴이 가려진다오."

그때 마침 구름이 몰려오며 하늘을 가렸습니다. 어미두더지가 이를 보고 다시 구름에게로 가서 사연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구름이 말했습니다.

"내가 능히 하늘세계에 가득하여 해와 달을 가리되, 오직 바람만이 나를 흩어 버리니 내가 바람만 못하오."

이에 다시 바람에게 통혼하니, 바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능히 나무를 끊고 집을 무너뜨리며 산과 바다를 까부르되, 오직 들판의 돌미륵을 쓸어 없애지 못하니 내가 돌미륵보다 못하오."

그리하여 다시 돌미륵에게 청하였습니다. 돌미륵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들 가운데 우뚝 서서 끄덕도 아니하되, 오직 두더지가 내 발꿈치를 파면 나도 기울어진다오. 그러니 내가 두더지보다 못하오."

이 말을 들은 아비두더지가 말했습니다.

"그것 보오. 그러기에 내가 처음부터 무엇이라 하였소."

그제서야 어미두더지도 제 딸의 사윗감으로 두더지가 제일 좋은 줄을 깨닫고 내외가 손을 맞잡고 돌아와서 두더지 세상에서 새 서방을 맞아 사위를 삼았다고 합니다.

두더지 부부가 제 분수를 모르고 주제넘은 짓을 하다가 결국은 두더지 세상으로 되돌아온다는 이 우화는 조선 선조 때 문장가 또는 외교가로써 명성을 떨친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이야기 모음집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실린 글입니다. 


이 우화처럼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착각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것. 그것은 자식이다."라는 유태인의 속담이 있습니다. 아이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이기에 착각의 덫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부모와 아이는 똑같이 성장하는 존재이며 한쪽만의 성장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성장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는 것이야말로 어버이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덕을 남겨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꽃사진: 줄무늬범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