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지혜란 배워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자득(自得)이 있어야 합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3. 29. 12:17


지혜란 배워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자득(自得)이 있어야 합니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시문집(詩文集)인 사숙재집(私淑齋集)에 실린 글로서 강희맹(姜希孟)이 자기 자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쓴 다섯 가지 이야기 훈자오설(訓子五說) 즉 도자설(盜子說), 담사설(膽巳說), 등산설(登山說), 삼치설(三雉說), 요통설(曜通說) 중 도자설(盜子說)입니다.

아버지 도둑과 아들 도둑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둑질을 업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둑질하는 재주를 다 가르쳐주고 나니 아들 도둑은 재간을 자부하여 자신이 아비보다 훨씬 낫다고 여겼습니다.

언제나 도둑질을 할 적에는 아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나오며, 경한 것은 버리고 중한 것을 취하며, 귀로는 먼 데 것까지 들을 수 있고, 눈으로는 어둠 속까지 살필 수 있어서 그는 제 아비에게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술법과 조금도 틀림이 없고 강건한 힘은 오히려 더 나으니 이로써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러자 아버지 도둑이 말했습니다.

"지혜란 배워서 이르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자득(自得)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아들 도둑은 아버지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둑이란 재물을 얻는 것이 제일인데 나는 아버지에 비해 소득이 항상 배나 되고 나이도 아직 젊으니 아버지의 연배가 되면 틀림없이 특별한 재주를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도둑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 나의 방법을 그대로 행하기만 해도 겹겹의 성에도 들어갈 수 있고 깊이 감춘 물건도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화가 따른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임기응변하여 거침이 없는 그런 수준은 자득(自得)의 묘(妙)를 터득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아들 도둑은 아버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밤 아버지 도둑이 한 부잣집에 가서 아들을 보물 창고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아들 도둑은 한참 탐을 내어 보물들을 챙겼습니다.

그때 아버지 도둑이 밖에서 자물쇠를 걸고 일부러 소리를 내어 그 집의 주인에게 들키게 하였습니다. 아들은 빠져나올 방도가 없자, 손톱으로 벽을 긁어 쥐 흉내를 냈습니다.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쥐를 쫓아내야겠다며 등불을 켜고 자물쇠를 열고 살펴보려는 순간 아들 도둑은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주인집 식구들이 모두 뛰쳐나와 쫓았습니다. 연못가를 돌아 달아나다가 아들 도둑이 큰 돌을 들어 연못으로 던졌습니다. 뒤쫓던 사람들이 도둑이 연못으로 뛰어들었다며 연못가에 둘러서서 찾았습니다. 아들 도둑은 주인 식구들을 속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자신을 사지(死地)에 몰아 넣고 먼저 도망을 쳤다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도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네가 모든 재주를 다 익혔다.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서 배운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心志)를 굳게 하고 솜씨를 원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내가 너를 궁지에 빠뜨린 것은 너를 안전하게 하자는 것이고, 너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너를 건져 주기 위한 것이다."

자득(自得)이란 스스로 깨달아 얻는다는 말입니다. 자득(自得)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주는 우화(寓話)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이론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패기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들 도둑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도둑질이라는 것은 극히 천하고 악한 기술이지만 그것마저도 스스로의 체험이 있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우화(寓話)입니다. 이것이 자득(自得)입니다. 벼슬하여 국록(國祿)을 누리는 자들이 인의(引儀)를 행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모른 채 현달(顯達)하고 나면 선대(先代)의 공(功)을 능가할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데 이는 바로 아들 도둑이 아버지에게 자랑하는 꼴이 아닐런지요.<꽃사진: 덴파레(Denphal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