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글이나 시를 쓰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고사성어 칠보지재(七步之才)

박남량 narciso 2015. 8. 19. 11:39


글이나 시를 쓰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고사성어 칠보지재(七步之才)



삼국 시대의 영웅이었던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건안(建安) 문학의 융성을 가져왔을 정도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맏아들인 조비(曹丕 186∼226)와 셋째 아들인 조식(曹植)도 글재주가 출중했다.

특히 조식(曹植)의 시재(詩才)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다. 그래서 조식(曹植)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曹操)는 한때 조비(曹丕)를 제쳐놓고 셋째 아들인 조식(曹植)으로 하여금 후사(後嗣)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

조비(曹丕)는 어릴 때부터 조식(曹植)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계자 문제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조조(曹操)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조비(曹丕)는 후한(後漢)의 헌제(獻帝)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라 일컫고 국호를 위(魏)라고 하였다.

조비(曹丕)는 즉위하자 이전에 후계자 지명 논란에서 반대 입장에 서 있던 신하들을 철저히 숙청하였다. 그리고 형제에 대해서도 인정사정 없는 탄압을 가하였다. 조조(曹操)가 살아있을 때 조식(曹植)이 조조(曹操)의 총애를 방패삼아 무슨 일을 할 때나 반항했던 점에 앙심을 품은 조비(曹丕)는 한 번은 동아왕(東阿王)으로 책봉된 조식(曹植)을 불러내어 이렇게 명령하였다.

『자건(子建=曹植의 아호), 선친이 살아 계실 때부터 너는 시재(詩才)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일곱 발짝 걸어가는 동안에 시 한 수를 지어 봐라. 만일 짓지 못하면 죽음을 택하라.』

이 자리에 같이 있던 신하들은 문제(文帝)의 비정한 말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아무고 감히 중재하려 들지 않았다.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양자의 치열한 항쟁과 이 때문에 생긴 원한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식(曹植)은 창백해진 얼굴로 말하였다.

『시제(詩題)를 내려주시오.』

『그래, 시제는 형제(兄弟)로 하여라.』

조식(曹植)은 더 이상 항거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한 발짝, 두 발짝.... 일곱 발짝째에 멈춰선 조식(曹植)이 형인 문제(文帝)를 향해 낭랑하게 읊은 것이 칠보시(七步詩)라고 한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칠보시(七步詩)는 다음과 같은 네 구로 되어 있다.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 콩을 볶으려고 콩껍질을 불태운다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은 가마솥 속에서 운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 그토록 다급하게 볶는가

칠보시(七步詩)는 동생 조식(曹植)의 간절한 형제의 정(情)과 형 조비(曹丕)의 비정함을 노래한 것이다. 읊고 난 다음 동생의 볼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리고 형은 불쾌한 듯이 자리를 떴다고 한다.

후계자 다툼에서 패한 조식(曹植)은 문학 방면에서는 꽃을 피웠지만 정치와 군사 면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의 갈고 닦여진 감각이 형인 조비(曹丕)의 차가운 성격과는 서로 용납이 되지 않아 불행한 생애를 보내게 되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편(文學篇)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칠보지재(七步之才)이다.

칠보지재(七步之才)란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글이나 시를 쓰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